문제는 인성이다
문제는 인성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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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전염병을 피해서 한적한 교외의 별장에 열 명의 남녀가 모였다. 그들은 무료함을 달랠 겸 매일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놓는다. 월요일에 시작해서 금·토요일은 제외하고 2주에 걸쳐 10일 동안 총 백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제는 섹스스캔들, 기득권의 부정부패, 계층 간 불만 등 다양하게 등장한다. ‘열흘 동안의 이야기’라는 의미의 소설 ‘데카메론’ 이야기다. 보카치오는 중세 흑사병으로부터 2주간 피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중세의 내세 중심적 세계관을 탈피해 사랑과 욕망, 운명 같은 현실세계에서 펼쳐지는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풀어낸 것이다.

코로나19를 피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오늘날도 매일매일 각자의 다양한 이야기가 온·오프라인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야기를 통해 숙고의 시간의 갖고 있는 셈이다. 풍족한 물질문명의 이면을 돌이켜 보고, 사고의 변화를 시도하는 중요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일각에서는 기원전·후에 견주어 이제는 ‘코로나 이전(BC), 이후(AC)시대’로 구분해야 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 지향점은 ‘인간’이다. 페스트 이후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르네상스를 불러왔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다시 인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인간다운 일이고 사랑’이라는 보카치오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와중에도 인간 본성의 근원을 의심케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성 착취 동영상 사건이나 지도층의 성추행 사건, 경비원 폭행사건 같은 반인륜적 사건사고를 접하면서 인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역사 이래로 중요한 화두였다. 인간에게는 양지양능, 즉 천성적으로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본성이 갖춰져 있고 이를 통해 인의예지가 발현된다는 이론이 있는가 하면, 제도와 법률을 엄격하게 정비하고 인위적인 교육을 통해 인간 본성을 선하게 해야 한다는 이론이 춘추시대 당시 이미 등장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내심 맹자를 믿고 싶었지만, 세월의 두께가 더해질수록 순자 쪽으로 기운다. 각자 삶의 방식에 따른 견해 차이가 있겠지만 , 선과 악이 공존하고 교육과 수양정도에 따라 인성이 발현된다는데 동의 한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인간 본성의 천사 같은 부분과 악마 같은 본성이 공존 한다는 주장을 풍부한 자료를 인용해서 무려 1400여 쪽 분량으로 풀어낸 그의 서적도 요즘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모습에서 ‘선한 천사’의 얼굴 보았기 때문이다. 남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자신과 연결 짓는 감정이입이 작동했고, 우리의 도덕적 감각과 이성적 능력이 발현되면서 인간 본성의 천사 같은 부분이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방역 한류’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정반대의 민낯도 드러났다. 이성적 판단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일부의 집단적 신드롬이 발생해 사태가 악화되기도 했다. 인간은 누구나 선한 천사의 마음 뿐 아니라 잔인한 악마의 폭력성도 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단지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악마의 폭력성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만 누구든 욕망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가치와 연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여기에 인성의 가치가 더해져야 한다. 제도와 교육을 통해 인간본성을 선하게 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2015년 7월 세계 처음으로 법제화 됐지만 사문화되다시피 한 인성교육진흥법을 활성화 시켜야 할 마지막 적기가 지금이라 본다.
 
한중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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