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27] 나비의 문장
강재남의 포엠산책 [27] 나비의 문장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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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문장 /안도현

오전 10시 25분쯤 찾아오는 배추흰나비가 있다
마당가에 마주선 석류나무와 화살나무 사이를 수차례 통과하며
간절하게 무슨 문장을 쓰는 것 같다
필시 말로는 안 되고 글로 적어야 하는 서러운 곡절이 있을 것 같다
배추흰나비는 한 30분쯤 머물다가 울타리 너머 사라진다
배추흰나비가 날아다니던 허공을 끊어지지 않도록 감아보니
투명한 실이 한 타래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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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25분, 이쯤은 이슬이 말라가는 시간. 이슬이 다 마르기 전 화살나무의 사연을 석류나무에게로, 석류나무에게서 화살나무에게로 연서를 전달하는 나비. 나무의 사연이 간절한 것인지 나비의 마음이 지극한 것인지. 저토록 투명한 날갯짓으로 보아 그 문장은 서러운 곡절이 있음이 분명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말로 다하지 못한 문장을 빼곡하게 적는다. 미처 전하지 못한 문장이 허공에 걸린다. 허공을 감으면 나도 실 한 타래 얻을 수 있을까. 실 한 타래 얻어 다시 풀면 내게도 새 문장이 걸어올까. 그러면 배추흰나비 날개짓 같은 곡진한 사연을 기록으로 남길 텐데. 풀리는 올마다 석류나무와 화살나무를 배경으로 삼을 텐데. 투명한 언어를 하나로 엮어 마침내 온기가 될 문장 하나 완성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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