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치례(廣大致禮)
광대치례(廣大致禮)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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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내 몸에는 광대 피가 흐르고 있지 싶다. 나의 아버지는 동네 최고의 상쇠였다. 명절이 되면 아버지는 동네 농악대를 이끌고 온 마을을 휘젓고 다니셨다. 나도 어깨 너머로 피아노와 기타를 약간이나마 익혔으니 끼가 있긴 있었지 싶다. 나의 두 아들들은 그런 나의 피를 이어받았나 보다. 일찌감치 기타와 드럼으로 인생승부를 걸었다. 이제 제 밥은 제가 먹을 수 있을 지경이니 이 길로 간 것이 잘 한 것이라 생각한다.

광대가 최고의 인생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세상이 됐다. 대한민국 텔레비전 채널마다 광대 뽑기 난장판이다. 획일화의 다양성이라 해야 할까? 다양한 획일성이라고 해야 할까? 광대는 광대다워야 한다. 광대 피가 흐르지 않고 겉 치례만 광대는 광대 아니다. 속과 겉이 일체감을 가지고 광대가 되어야 광대다.

광대치례라는 말이 있다. 광대가 지녀야할 네 가지 자격조건이라고 하는 게 더 쉽게 다가갈 것이다. 첫째가 인물치례(人物致禮)다. 뭐니 뭐니 해도 인물이다. 한 눈에 느끼는 인상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성품이다. 둘째는 사설치례(辭說致禮)다. 옛날 어른들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새살 좋다’고 했다. 아마도 이 ‘사설’에서 나왔지 싶다. 입담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입담 뿐 아니다. 판소리를 완창하기 위해서는 길게는 아홉 시간이나 지속되는 가사를 암기해야 한다. 그러니 머리가 좋아야 한다.

셋째는 비로소 득음(得音)이다. 득음을 하기까지는 피를 토하는 노력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소리가 천성으로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인고의 노력을 한 사람의 소리를 따를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이 너름새다. 인물과 사설이 되고 득음까지 했다 하더라도 손끝으로 표현되는 품새가 살아 있어야 한다. 광대에게 있어서 이 ‘선’은 화룡점정과 같다. 그러니 천성과 문학, 음악과 연극의 종합예술적 엔터테이너가 광대다. 인물은 타고난 것임으로 노력으로 될 것이 아니나 사설과 득음, 너름새는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는 극복할 수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사람 됨됨의 기준이었다. 가만 보면 광대치례와 다름 아니다. 타고난 운명과 후천적인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광대도 되고 벼슬길에도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니 비록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할지라도 제 홀로된 것이 아니요 하늘의 은덕이 먼저요 그 후에 나의 노력이 있다. 하늘의 은덕은 곧 세상의 원리요 자연의 이치니 내가 좌우할 수 없는 조건들에 무릎 꿇는 것이 먼저다.

조문환/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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