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처럼 사는 삶
엄나무처럼 사는 삶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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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나무마다 푸름이 내려앉았다. 새순을 나물로 먹을 시기가 지났지만 나무는 시기에 관계없이 휴(休)식이다. 한곳에 뿌리 내리고 산 나무가 세상의 지혜를 말해준다고 할 수는 없어도 수령이 오래된 고목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고요한 숲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세상사 잡다한 일로부터 탈출할 수 있어 좋다. 고목이 울창한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첩첩의 산골짝이나 아득한 능선들을 바라보며 두둥실 뜬 흰 구름 아래 몸을 누이면 삶에 지친 자신을 제대로 관조(觀照)할 수 있다. 태초에 인간은 숲속에서 그 진화를 시작했을 듯하다.

별모양의 커다란 잎을 가진 엄나무는 쓰임이 많다. 어린 순을 데쳐 나물로 먹으면 향긋하고 알싸한 봄의 미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다 그 맛이 워낙 독특하고 몸에 좋다하여 ‘참두릅 팔아 개두릅 사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두릅 맛은 밋밋하나 개두릅순은 진한 향기가 있다. 가시가 많아 옛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낸다고 믿었다. 간혹 사랑방문 위나 대문가에 가시 많은 가지를 매어두고 벽사의 방편으로 이용했다. 어린 가지일수록 가시가 촘촘하고 날카롭다. 아이가 병치레를 하면 엄나무 몽둥이로 종아리나 어깨를 치는 시늉도 했다. 팔작지붕을 얹은 고대광실이든 돌담에 단출하게 수수대로 엮은 질박(質朴)한 초가든 아이 많은 집은 엄나무 가지를 곁에 두었다. 어린 엄나무는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강하고 뾰족한 가시를 두른다. 봄이 되면 해마다 순을 채취하거나 약재로 활용하기 위하여 가지치기를 하다 보니 가시가 점점 더 많아지고 날카로워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기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가시가 있다고 벌레나 짐승의 침노가 없을 리 없지만 자연 속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은 미물이라도 타고난 천성이다.

오래되고 나이든 엄나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시가 줄거나 없어진다. 사는데 자신이 생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날카로운 가시가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가시가 없는 웅장한 엄나무는 왠지 여유(餘裕)있어 보인다. 어울려 사는 데는 그렇게 심한 자기보호가 필요하지 않다. 가시를 떨어뜨리며 늙어가는 엄나무를 보면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집과 불통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곁에 있는 것들이 자유롭게 오가도록 잔가시를 떨어뜨린 담벼락 곁 웅숭깊은 고목은 없는 듯 살면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안온(安穩)한 삶의 지혜를 일러준다. 모름지기 나이가 들수록 사는 집 담장도 낮추고 타인과의 경계(境界)도 허물 일이다.

이덕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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