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43]지리산 세석평전
명산 플러스 [243]지리산 세석평전
  • 최창민
  • 승인 2020.05.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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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으로 피어나는 산꾼의 영혼을 찾아서

‘잔돌밭’이라는 평범한 뜻을 가진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이름과 달리 신비한 곳이 많다. 지리산 어느 곳이 그렇지 않은 데가 없지만 세석은 더욱 그렇다.

과거 텐트촌을 방불케 했던 세석
이 시대의 기인 우천 허만수 선생은 젊은 시절, 고원 같은 세석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다. 지금의 세석대피소가 들어서기 전의 일이다. 1916년 진주 옥봉동에서 태어난 그는 더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전문대 철학과를 다니며 일본의 산들을 섭렵했다. 귀국 후 가정을 이루기도 했으나 세석에 들어가 속세를 떠난 구도자처럼 오직 지리산 산악인으로 살았다. 워낙 체력이 좋아 신출귀몰했는데 ‘날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져 호사가들은 지리산 산신령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이 같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지리산 초기 등산로를 개척하고 지도를 제작했다. 통천문에 사다리를 설치한 일이나 조난한 대학생을 구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가 쉰을 갓 넘긴 1976년 6월 어느 날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세석고원 어느 곳이 그가 영면한 천국이리란 걸 짐작할 뿐이다.

이를테면 세석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신령처럼 살다간 우천의 신비로운 삶이 서린 곳이다. 훗날 필자는 지리산 언저리에서 찾지 못한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인 그의 딸을 본적이 있다.

세석고원에는 신비로운 청학연도 숨어있다. 청학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게 불일폭포의 청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 거라는 짐작만 할뿐이다. 본보 복간을 앞두고 전 직원이 내대리에서 1박2일 수련회를 하면서 세석을 찾았던 인연도 30년이 넘은 일이다.

 
세석평전
▲등산로: 시천면 세석길 199· 주차장→솔바구산장→거림 탐방지원센터→늙은 소나무→무명폭포→천팔교→북해도교→무명교→남부능선 조망처→세석교→갈림길→세석대피소→촛대봉 반환→거림탐방지원센터 회귀. 14㎞에 휴식포함 7시간 소요.
 
신록이 짙어가는 거림골
가장 손쉬운 접근로는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거림마을이다. 지리산 북쪽 백무동 한신계곡에서 넘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지형이 험한 데다 주행거리가 길어 상당한 수고가 필요하다.

내대리 거림 쪽은 비교적 완만해 산행이 수월하다. 철쭉제가 열리는 6월 초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거림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30m쯤 올라가면 세석의 산문격인 늙은 소나무가 반긴다. 내대천을 왼쪽에 두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계곡 ‘자빠진 골’이 왼쪽 남부능선에서 흘러 내려온다.

참나무시들음병을 방제하기 위해 끈끈이 롤 트랩을 설치한 참나무가 등산로 곳곳에 보인다. 이 병은 ‘광릉긴나무좀’ 해충이 병원균을 몸에 지닌 채 참나무를 뚫고 들어가 번식한다. 감염된 참나무는 줄기의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를 막아 잎이 시들고 마르면서 고사한다. 방역당국은 매개충인 광릉긴나무좀이 날개가 돋는 4월∼5월 끈끈이 롤트랩을 설치해 박멸하는 방법을 쓴다. 지리산 일대에 1000여본 이상의 멋진 참나무가 죽어나갔다. 최근에는 관리가능한 수준인 수 십그루까지 줄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이름 없는 폭포까지 1시간 10분이 걸린다. 철쭉은 일러 가끔 보이고 숲은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다.

등산로가 처음으로 물길을 만나는 곳에 천팔교가 있다. 불교 용어 백팔이 아닌 천팔교라는 이름은 해발 1008m지점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조금 더 오르면 이번엔 북해도교다. 이 지역 한겨울 날씨가 일본 북해도(홋카이도)만큼 춥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물길을 건너면 한참동안 드센 오름길의 연속이다. 왼쪽으로 내대 골 본류인 음양수 골이고, 우측은 북해도 골이다. 오른쪽 북해도 골 물길 끝에 청학연이 있다. 길이 없어 접근이 어렵다. 세석대피소나 촛대봉을 거쳐서 가는 길이 있지만 이 역시 비법정탐방로여서 출입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몰래 산행을 하는 등산객이 많다고 한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칠선계곡탐방로처럼 일정기간을 정하고 인원을 제한해서 국립공원 직원이 안내하는 방식으로 탐방이 가능토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없는 다리가 몇개 더 나온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많다. 평원의 특성상 강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물길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아예 다리를 많이 설치한 것이다. 여름 장마철이면 곳곳에서 많은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청학연의 물은 내대골을 따라 덕천강 남강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급히 고도를 높인 후 한숨을 돌리면 전망대다. 이 전망대에선 장쾌하고 아름다운 남부능선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남부능선은 세석의 최고봉 영신봉에서 음양수 창불대 석문 삼신봉을 연결하는 거대한 지리산줄기이다.

영신봉에서 삼신봉(1280m)까지 10㎞, 다시 내삼신봉(1354m), 내원재를 거쳐 형제봉(1114m)에 이른다. 이도 끝이 아니다. 형제봉에선 발아래에 신선봉이 있고 그 아래로는 섬진강까지 내달린다. 이 능선은 길게 100리를 헤아려 주능선에 버금가는 역대급의 장대함을 보여준다.

시작점 영신대는 영신봉 아래 있는 바위대. 청정수가 흐르고 거대한 암반 앞 공터엔 철따라 꽃이 피고 새가 운다. 가끔 산노루가 물을 찾아 들어온다. 요즘엔 산나물이 지천이다. 더 아래에는 유명한 음양수가 위치한다. 햇빛이 드는 쪽의 양수와 그늘진 곳의 음수가 합해져 음양수이다. 음양의 화합을 의미하는 석간수이다.

다음은 남부능선의 정점인 창불대이다.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뜻이 담겼다. 주변의 병풍바위 자살바위와 함께 남부능선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힌다. 세석을 오르내릴 때 볼수 있는 숨은 비경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보인다. 특히 거림골 내림 길에서 바라본 이 일대 바위들은 갖가지 기묘한 형상을 보여준다

전망대를 지나 세석교를 건너고 세석에 닿는다. 사실 세석은 철쭉의 대명사로 통했다. 1970년대만 해도 이 일대가 온통 연분홍 철쭉으로 뒤덮였다. 아둔한 등산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기 이곳은 해수욕장을 방불케 하는 텐트촌과 다름없었다. 사람의 발길은 무서웠다. 세석고원 일대는 순식간에 민둥산이 돼버렸다. 국립공원 지정 후 수 십년간 복원을 시작해 지금은 철쭉과 구상나무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른 시기여서 철쭉은 피지 않았다. 꿩 대신 닭?, 피어난 진달래로 아쉬움을 달랜다. 세석고원 철쭉은 적어도 6월초가 돼야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세석대피소 지나 천왕봉방향으로 올라 촛대봉 능선에 선다. 말이 필요치 않다. 일망무제, 지리산 주릉, 천왕봉에서부터 달려온 산줄기는 촛대봉을 지나 반야봉 노고단으로 달려간다.

내려다보이는 세석대피소는 그 옛날 우천이 삶을 이룬 초막이 있던 자리다. 지리산을 깨우고 가꾸고 사랑한 그의 흔적은 이 외에도 기도터라는 이름으로 세석 일대 곳곳에 남아 있다. 기도터는 모두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중앙 높은 곳에 제단을 놓고 양 옆으로는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길쭉한 돌을 세워서 쌓았다.

발 아래 있을 청학연을 가늠해보고 발길을 돌린다.

오름길에서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창불대 자살바위 병풍바위 산 마루금이 해가 서쪽 하늘로 떨어지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립공원사무소는 세석의 환경을 보호하기위해 정원을 정해 주말 산행객을 제한하고 있다. 세석을 찾을 때는 반드시 국립공원 측에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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