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1)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1)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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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지역문학 연구가요 시인인 박태일 교수 정년하다(3)
‘박태일의 시살이 배움살이’에 실린 작품 작가론편에 민현기의 <김용택, 박태일 나태주의 정치의식>을 읽기로 한다. 김용택 시인이나 나태주 시인과 박태일 시인의 차이점을 바라보는 글인데 눈에 먼저 들어온다. 민현기는 “김용택, 박태일, 나태주의 시에서 우선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작품의 소재들이 대부분 ‘자연’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세 시인이 모두 농촌 출신이라는 점과 지금도 고향에서 또는 그 고향의 체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밀접하다. 한편 당연한 지적이겠지만 이 속에는 차별성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차별성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연을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세 시인의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김용택, <섬진강 1>에서



새로 단장한 원동교 교각에 가면/수영강 물빛이 엎드려 있다/ 더러는 밑으로 흐르고 새로 흐르고/ 꽃이 흐르고 미나리밭 아래 묻힌 조개무지 옛마을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말리는 올고사리 늦고사리/ 얼굴 뭉개진 동래 정가 정서가 흐르고 -박태일 <수영산 수영강>에서



비단강이 비단강임은/ 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니다 -나태주, <금강 가에서> 중에서



이렇게 똑같이 ‘강’을 노래하고 있지만 세 시인의 입장과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 김용택은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을 포용하면서 생명있는 모든 것들을 다독거리고 어루만지며 굽이 굽이 의연하게 흘러가는 강의 모습에 중점을 둔다. 이렇게 형상화 된 강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가로지르며 살아온 민중의 삶과 정서를 폭넓게 접할 수가 있다.

박태일의 강은 이와는 다르다. 삶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역동성을 지닌 김용택의 강에 비해 박태일의 강은 고요하고 잠잠한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김용택의 따라가며 보는 강물이 아니라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므로 더욱 정태적으로 느껴진다. 때문에 박태일의 강에서 삶의 현장감이나 꿈틀거리는 운동성을 맛보기란 매우 힘들다.그것은 삶의 중심부를 보여준다기보다 그 배후의 그림자 또는 뒤에 남아 있는 흔적과 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가능한 한 호흡을 가다듬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차분하게 삶을 성찰하는 시인의 안정된 태도가 위의 작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해 나태주의 강은 또 다르다. 나태주에게 금강은 커다란 깨달음의 계기로 작용한다. 많은 강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비단강의 진짜 아름다움을 깨닫듯, 그대의 소증함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난 다음에 깨닫게 된다는 단순한 논리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논리는 이 작품애서만이 아니라 자연을 노래하는 나태주의 많은 작품을 통해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민현기는 이렇게 대비하고 박태일의 시편들 <하늘 둥지>, <피라미가 잡히는지>, <가락기 3>, <쇠뜨기> 등을 예로 들면서 박태일의 정치의식은 훼손되고 더럽혀지는 일상적 삶에 대한 섬세한 시선과 꼼꼼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부조리나 비리를 직접 고발 비판하고 있지는 않지만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삶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이른바 ‘정치적 무의식’의 형태로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시가 전망의 투시물이며 극복의 형식이며 사랑 방법이라고 믿는 박태일의 입장과 태도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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