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을 기다렸는데…” 거창사건 배상법 또 자동폐기
“70년을 기다렸는데…” 거창사건 배상법 또 자동폐기
  • 이용구
  • 승인 2020.05.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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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안심사소위 문턱 못넘어
정부 반대 부딪혀…유족들 허탈
거창사건 희생자 및 유족 배상의 내용을 담은 ‘거창사건 희생자 배상과 관련한 특별법안’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될 운명에 놓이자 유족들이 허탈함을 토로했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9일 거창사건배상법안 등 3건의 법안을 상정해 심의했지만 정부측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해 오는 29일 20대 국회가 만료되면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법안심사소위원들은 “거창사건은 국가가 명백하게 불법임을 인정한 사건으로서 제주 4·3사건과는 다르기 때문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법무부가 반대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는 “재정안은 ‘소멸시효’를 배척하는 최초의 국가배상 관련 특별법으로 기존 법 질서에 대한 혼란과 제주 4·3사건, 여순 사건 등 6.25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의 배·보상 요구 및 입법 청원 증가가 우려된다”며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을 포함한 등 6.25 전후 민간인 희생자 25만명 보상시 25조원 수준의 재정을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한 것으로 알렸다.

거창사건배상법안은 지난 1996년부터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 후 그동안 30여년동안 9차례에 걸쳐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2004년에는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16대 국회 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유족들은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통과를 기대하며 기다려왔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 의원 2명과 야권의 지역구 의원이 내용이 같은 3건의 법안을 각각 내면서 처리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 터였다.

이성열 거창사건 유족회장은 “70여년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기대가 됐는데 통과가 안돼 유족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며 “생존 피해자와 1세대 유족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조속한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 서종호 부회장은 “거창사건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거청산의 필수적 과정이자 시대적 사명이다”며 “정부와 국회가 70년이 되어도 정의할 수 없는 사건으로 방치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모독하는 일이자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다”고 정부와 국회를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그러면서 “거창사건은 여타사건과는 달리 역사적 진실이 규명된 사건으로서 정부는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합당한 배상으로 억울한 희생자들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창사건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한국군에 의해 거창군 신원면의 민간인이 대량학살 된 사건이다. 공비를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15세 이하 어린이 359명을 포함, 민간인 719명이 살해됐다. 당시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던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본대가 빨치산의 기습공격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자 대대장은 병력을 이끌고 신원면의 민가에 들이닥쳤다. 가옥에는 불을 지르고 가축과 양식을 약탈한 뒤 주민들을 모아놓고 총기를 난사, 살해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인 국군에 의한 대량 양민학살이란 뼈아픈 과오를 남긴 사건이다.

이용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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