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철이 오면
모내기철이 오면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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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비가 그친 오후 백운 호숫가를 걷는다. 산 아래에 있는 보랏빛 등나무 길을 따라 가까운 논길로 접어든다. 모내기로 갓 땅내를 맡은 연초록 잎들이 물이랑을 이루며 반짝인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이 있는 대로 다 필요했다. 일손이 모자라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은 형편이었다. 요즘은 이앙기로 몇 시간이면 모내기를 마칠 수 있으니 놀랍다.

힘든 농사일 속에서 어머니가 못하는 일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농부가 소를 앞세우고 땅을 갈아엎는 쟁기질이었다. 논을 갈아엎어야 모를 심는데 그 일을 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셋째 딸인 내가 장골인, 아들이었으면 하고 탄식했다.

농번기에는 마을에서 일꾼을 구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멀리 계시는 고모할아버지 도움을 받았다. 고모할머니는 친정에서 어린 조카를 귀히 여겼던지라, 어머니가 사정사정하니 하도 딱하여 할아버지를 설득하였다.

고모할아버지는 농사일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얀 모시 적삼에 긴 수염을 한 조용하고 근엄한 모습이었다. 집안에서는 책만 펼치던 양반집 어른으로 농사일을 거의 안 하고 사셨다고 했다.

농사철 잠시 기거하는 동안,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위엄이 있어 우리들은 조신하게 움직였다. 가족 모두에게 귀한 분이지만 궁색한 살림살이라 특별한 생선구이나 고기반찬이 없어 어머니는 번번이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가실 무렵이면 어머니의 격식은 고무풍선의 공기처럼 빠져나가고 한동안 고요의 무게는 긴 여운으로 남았다.

고모할아버지는 논밭에서 쟁기질하는 일보다 서당에서 책 읽기가 더 쉬웠는지, 무논을 갈아엎은 논 귀퉁이는 먹기 싫은 개떡만큼 군데군데 남겼다. 어머니는 구석구석 괭이질로 손질을 다시 했지만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다랑논을 감지덕지하게 여겼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열일곱에 나는 어머니 곁에서 농사일을 살뜰히 배웠다. 그 뒤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학교로 돌아왔으니 어머니의 장애물이었던 쟁기질은 뛰어넘지 못했다. 장골의 아들 자리는 어쩌면 농토를 지킬 수 있는 집안의 기둥 자리었다. 어머니 가신 길, 지금까지 일구어낸 옥토를 어느 자식도 가꾸지 못하였다. 형제들 가슴마다 상실의 슬픔을 지녀야 했던. 모내기철이 오면, 무논에서 종종걸음을 치던 어머니의 애잔한 모습이 물이랑을 이룬다. 그리움 한 가닥 깊은 상념 속으로 물든다.

 
허정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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