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2) 브로드피크의 아쉬운 사투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22) 브로드피크의 아쉬운 사투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4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풍과 폭설 속 43일간의 도전…지친 철수

경남산악연맹 창립 12주년 기념 등반
한국초등·8000m 무산소 등정 도전
 
햇살에 빛나는 브로드피크
1992년 경남산악연맹(회장 허금)은 창립 12주년을 맞았다. 경남연맹은 연맹 최초로 8000m 등정을 위한 원정대를 구성했다. 특히 무산소 등반과 고소 포터 없이 순수 국내 산악인들만의 등반을 준비했다. ‘1992 한국브로드피크 사랑과 우정 원정대’였다.

허금 회장은 “이번 원정대는 처음으로 8000m급 무산소 등정에 도전한 것으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에 위치한 브로드피크는 한국이 등정하지 못한 산이다. 이번 원정은 한국 산악사를 빛내고 국위 선양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어 경남 산악인을 대표해 깊은 찬사를 보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992년 5월 3일 원정대는 파키스탄에 도착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등반에 필요한 식량과 장비를 구입하고 행정 절차를 1주일 만에 마무리했다. 5월 중순 원정대는 이슬라마바드~스카루드를 비행기로 이동했다. 5월 13일 지프를 이용해 호토에서 멈춰 섰다. 원정대는 아스콜리를 거쳐 카라반을 시작한 지 10일 만인 5월 23일 베이스캠프(4900m)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등반 루트인 서릉과 마주보고 있는 ‘하늘의 절대군주 K2’를 비롯해 초골리사(7665m), 엔젤피크(6805m)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튿날 날씨는 화창했다.

 
발대식
브로드피크 팸플릿

등반 첫날 1캠프 건설

컨디션이 좋은 대원들이 등반에 나섰다. 정갑진 등반대장과 황동진·홍재기·최부훈 대원들은 루트 정찰에 나섰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처럼 대원들은 그날 1캠프(5400m)를 설치했다. 그러나 더 큰 성과는 영국 원정대가 설치한 전진베이스캠프(ABC)에 대한 정보였다. 영국은 1캠프가 시작된 입구에 ABC를 설치하고 식량과 장비를 옮겨놓아 수송에 부담을 줄였다. 이를 목격한 대원들은 ABC 설치를 제안했고 영국 바로 아래 텐트를 설치했다.

5월 26일 아침부터 눈이 날렸다. 전 대원은 날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장비와 식량을 ABC로 운반했다. 카라코람에서 빙하를 건너야 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새벽에는 날이 추워 큰 위험은 없지만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낮에는 빙하가 무너지거나, 급류가 생기면서 자칫 큰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캠프를 설치하기 위한 작업은 순조로웠다.

눈사태로 사라진 텐트…

5월 27일 새벽 6시 대원들은 BC를 출발했다. 1캠프에 머물 1개조와 짐만 수송할 1개조가 나섰다. 빙하를 건넜지만 ABC 텐트가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은 전날 밤 눈이 내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진출했다. 앞서가던 홍재기 대원은 급하게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원정대와 영국 원정대의 텐트가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BC. 우리 팀과 영국 팀 텐트가 없어졌다.” 그는 무전으로 사실을 알렸다.

텐트에는 로프와 스노바, 텐트, 가스 등 많은 장비와 식량이 있었다. 원정대는 식량과 장비를 분실하고 이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제2의 눈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약 300m 떨어진 안전한 곳에 전진캠프를 다시 설치했다. 장비와 식량 역시 수송하는 등 앞으로 등반과 정상 공격에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아 3일째 계속 눈이 내렸다. 강한 바람도 브로드피크 전체에 휘몰아쳤다. 폭설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처마들이 곳곳에서 무너지며 눈사태가 일어났다. 대원들은 베이스캠프에 꼼짝없이 발이 묶여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1캠프_2캠프 구간을 지나는 대원들

2캠프 설치…고소로 하산

다행히 5월의 마지막 날 등반대장을 비롯해 황동진·이상욱 대원이 2캠프를 설치했다. 대원들은 안전한 운행을 위해 1~2캠프 1000m 구간에 고정로프를 설치하는 등 눈사태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여전히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대원들은 3캠프(6700m)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6월 2일 2캠프 위쪽으로 안개가 심하게 형성되어 있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3캠프 진출이 쉽지 않았다. 폭설과 강풍이 거의 매일 이어지고 심한 가스가 등반 구간을 뒤덮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특히 3캠프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청빙구간이라 등반 속도가 나지 않았다. 강한 바람은 대원들을 날려 보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브로드피크 서릉은 콩고르디아에서 탁 트인 곳으로 바람은 대원들을 오른쪽 측면에서 불어대며 괴롭혔다. 자칫 강한 바람에 날릴 경우 2000m를 추락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했다. 대원들은 안전을 생각해 매일 조금씩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2캠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함께 등반하고 있는 영국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강한 바람과 기상악화로 2캠프에 머물던 6명 대원 가운데 3명은 심한 고소를 호소하며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열흘 넘는 작업 끝에 3캠프 구축

6월 4일 날씨가 호전되자 원정대는 활기가 넘쳤다. 김인기·허외택 대원이 베이스캠프에서 1캠프로 식량과 장비를 수송했다. 다음날 1캠프에 머물던 최부훈·이상욱 대원은 2캠프로, 2캠프에 머물던 정갑진 등반대장·황동진·이강철 대원이 3캠프로 향하며 고정로프를 설치해 나갔다. 그러나 3캠프 구간은 경사도가 60도를 넘고, 얼음과 눈이 섞인 지대라 전진이 어려웠다. 대원들은 루트 개척을 위해 조를 편성하고 애를 썼지만 하루에 100m를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열흘이 넘는 대원들의 노력으로 6월 18일 드디어 3캠프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2캠프에서 3캠프까지 고정로프가 깔리자 등반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안전을 확보한 대원들은 이틀 후 4캠프(7100m)를 설치하고 정상 공격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영국팀은 악천후에 등반이 불가능하다며 2캠프로 물러났다. 한국팀보다 6일 늦게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독일원정대는 4캠프를 설치하고 정상 공격을 앞두고 있었다. 6월 21일 독일팀 4명은 정상으로 향했지만 폭설과 악천후로 실패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지친 2명의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로 하산하지 못하고 1캠프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한국팀들은 그들에게 침낭을 빌려주고 음식을 제공하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정상 등정에 나섰던 2명의 독일 산악인은 동상이 심해 헬기로 후송되기도 했다.

 
2_3캠프 구간을 운행하고 있는 대원들
3캠프로 향하고 있는 정갑진 등반대장
패퇴하는 외국 원정대…홀로 남은 한국

6월 22일 한국팀도 정상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전날에 이어 계속 몰아치는 강풍과 눈이 많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6월 24일 전열을 가다듬은 독일팀은 2차 정상 공격에 나섰지만 강한 바람에 눈보라가 시야를 가려 루트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특히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독일팀은 철수를 결정했고 외국 원정대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았던 스위스팀도 3캠프까지 진출한 후 포기했다. 브로드피크뿐만 아니라 K2, 가셔브롬1봉과 가셔브롬2봉 등 다른 산에도 악천후가 계속돼 등정에 실패하고 많은 원정대가 철수를 결정했다. 마지막 남은 한국원정대는 현재 4캠프보다 400m를 높여 5캠프(7500m)를 설치해 정상까지의 거리를 좁히기로 했다. 그러나 날씨는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대원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이 그치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간전히 기도했다. 하지만 날씨는 그들의 간절함을 바람으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정상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 대원
하염없이 내리는 눈…멀고도 먼 정상

몬순이 다가오자 더 이상 정상 공격을 미룰 수는 없었다. 6월 28일 5캠프를 설치하고 다음날 곧바로 정상으로 향했다. 계절이 바뀌는 몬순의 날씨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강한 바람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고, 허리까지 빠지는 많은 눈은 발목을 잡았다. 5캠프로 돌아온 원정대는 30일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었다. 황동진·최부훈·이상욱·김인기 대원이 5캠프를 떠났다. 대원들은 교대로 눈을 헤쳐나갔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300m를 전진하는데 약 4시간이 흘러갔다. 대원들은 7800m 지점에서 계속되는 러셀 작업으로 점차 힘을 잃어갔다. 만약 어렵게 8000m를 넘어 정상에 선다고 해도 탈진 상태에 빠진 그들이 5캠프로 돌아올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정갑진 등반대장은 등반을 포기하고 철수 명령을 내렸다.

정갑진 등반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거의 20일 넘게 브로드피크 정상부에 강풍과 많은 눈이 내려 등반 시간이 지체되고 대원들은 지쳐갔다. 몇 일간만 날씨가 좋았다면 정상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기상악화가 장기화되면서 정상 공격을 계속 밀어 부칠 경우 대원들의 희생이 따를 것 같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출처 123rf.com
사진 출처 123rf.com
브로드피크(Broad Peak)
위치: 파키스탄 카라코람 위도 35° 48′, 경도 76° 34′
 
브로드피크는 파키스탄령인 카슈미르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에 위치한 K2(8611m), 가셔브롬1봉(8068m)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산이다. 1892년 영국의 콘웨이 원정대가 이 산을 발견하고 명명했다. 브로드피크는 주봉(8047m)과 중앙봉(8016m), 전위봉(7550m)으로 구성되어 있다.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 중부 알프스에 솟아있는 브라이트호른(Breithorn)과 매우 흡사해 ‘브로드피크’로 명명했다. 브라이트호른 주봉(4165m), 중앙봉(4160m), 동봉(4141m) 3개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브라이트호른은 독일어로 ‘폭이 넓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산 모양이 비슷해 영어로 이름을 붙였다. 파키스탄에서도 ‘폭 넓은 봉우리’라는 뜻의 팔찬캉리(Falchan Kangri)로 불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