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6]천년불심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6]천년불심길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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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넘나들던 선성들의 포행길

 
◇도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선암사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되면서 세상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냥 가정에 머물러 있는 것도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걷기나 산행 등을 통해 체력을 증진하여 면역력을 키우는 것 또한 질병을 이겨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코로나19도 독감처럼 우리 곁에 상존할 수 있다고 하니 장기적으로 보면 체력과 면역력을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오랜만에 명품 걷기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회장 이준기) 회원들과 함께 전남 순천에 있는 ‘천년불심길’을 찾았다. 천년불심길은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승려들의 포행길이다. 선암사주차장-선암사-작은굴목재-보리밥집-배도사대피소-송광사-송광사주차장까지 약 9km의 길을 트레킹하기로 했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걸어 올라가자 승선교가 나타났다. 조선 숙종때 호암대사가 6년간에 걸쳐 축조했다고 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인 이 홍교는 그 우아한 자태가 탐방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승선교(昇仙橋)는 속세에서 신선의 세계로 접어드는 경계인지도 모른다. 다리를 건너자 바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누각인 강선루(降神樓)가 있었다. 불교 도량에 도교적 삶이 깃들인 걸 보면 두 종교가 궁극적으로 서로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여름 숲속의 선암사는 고즈넉했다.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지닌 절인 선암사는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먼저 승선교와 더불어 선암사의 3대 명물로 불리는 해우소와 누운소나무를 찾았다. 재래식 통시인데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해우소 현판엔 ‘뒤ㅅ간’이라는 옛글체가 쓰여 있었다. 직접 들어가 보니 화장실 밑바닥과 발판에 쌀겨가 뿌려져 있었다. 그제서야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해우소 바로 뒤쪽에 누운소나무가 한 줄기는 선 채, 다른 한 줄기는 누운 채 기품있는 모습으로 선암사를 지키고 있었다.

 
 
◇시장기도 함께 비벼 먹는 천하일미 보리밥

선암사를 한 바퀴 돈 뒤, 작은굴목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선암사에서 30미터 정도 올라가자 선암사마애여래입상이 탐방객들을 반겼다. 살짝 기울어진 바위에 반듯한 모습으로 새겨놓은 마애여래상에서 부처님께서도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를 많이 쓰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작부터 경사도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 줄곧 오르막 숲길이다. 처음엔 탐방객들끼리 일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행을 했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힘이 부치는지 모두들 묵언정진하기 시작했다. 옛날, 이 길을 포행하셨던 스님들도 이러한 방법으로 수행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에 이르고 신선의 경지에 닿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긴 시간의 수행 끝에 잠깐 만나는 깨달음이 곧 도이고 선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산길을 2km정도 걸어가자 작은굴목재에 닿았다. 울창한 숲이 긴 굴을 이루었다고 굴목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발 720미터, 웬만한 산보다 더 높은 고개다.

힘들었지만 탐방객들의 얼굴엔 모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어쩌면 신선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굴목재에서 1.5km 정도 내려가자, 고된 수행을 자원한 수행자 모두가 고대하던 보리밥집이 나타났다. 그토록 힘들어하던 탐방객들의 표정이 보리밥 앞에서 동자승의 미소처럼 해맑아 있었다. 시장기도 함께 비벼서 그런가, 지금까지 먹어본 비빔밥 중에서 최고의 맛이었다.

보리밥집에서부터 걷기 쉬운 내리막길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가파른 내리막은 주로 돌길이었는데 오르막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다행하게도 숲터널이 계속 이어졌고, 길 옆 흐르는 계곡물과 새소리들이 다리품을 덜어주었다. 가파른 길을 조금 내려오자 현대식 건물인 배도사대피소가 있었다. 깊은 산골에 무슨 대피소냐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1969년 조계산에서 광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폭설에 길을 잃어 여러 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은 뒤, 조난 사고를 막기 위해 대피소를 지었는데 배도사란 사람이 5~6년 정도 머물다간 곳이라 하여 배도사대피소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km 정도 내려오면 오두막처럼 생긴 송광대피소가 정겹게 탐방객을 맞이해 준다.

 
 
◇송광사의 3대 명물 이야기

보리밥집에서 3.8km 정도 내려오자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에 닿았다. 송광사에도 3대 명물이 있다. 송광사 제6대 원감국사가 중국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며, 만든 기법이 특이하여 위로 포개도 맞고 아래로 맞춰도 그 크기가 딱 들어맞아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어떻게 만들었는지 헤아리기는 어렵다.’고 해서 능견난사(能見難思)라 불리는 놋쇠 바루, 비사리구시와 천자암에 있는 쌍향수 3가지가 명물로 꼽힌다.

능견난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성보박물관을 폐쇄해서 볼 수가 없었고,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쌍향수는 줄기가 몹시 꼬여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닮은 진기한 모습의 향나무인데 이 또한 천자암에 있어 볼 수가 없었다. 송광사 경내 느티나무로 만든 비사리구시만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전해져 오는 전설에 의하면 길이 17자, 높이 3자, 너비 4자 크기의 거대한 구시엔 4천 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쌀 일곱 가마 분량의 밥을 담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송광사 승려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제 보니 전설 속의 크기 정도는 아니지만 필자가 본 구시 중 가장 큰 구시였다.

신선 세계에서 5시간 동안 수행을 해서 그럴까, 집으로 돌아오는 일행들의 얼굴에서 무념무상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코로나19를 예방하는 천연백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종현 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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