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과 똘레랑스(TOLERANCE)
프랑스인과 똘레랑스(TOLERANCE)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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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자(안나) 수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프랑스 모원 소속
올해로 프랑스 선교생활을 시작한지 십 년째다. 프랑스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87년 7월. 20명의 프랑스어 교사가 그룹이 되어 6주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그곳의 대성당 등 명소와 시내를 돌아보는데, 한국 사람 특유의 성격대로 바쁘게 다녔다. 프랑스의 중·소 도시들의 거리는 시내 중심만 아니면 폭도 좁고, 번잡하지 않아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도 그냥 건너가곤 했다. 그러면 운전자가 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이러한 행동을 우리나라에서 했다면 운전하는 사람의 반응이 어떠 했을까? 어쩌면 저들은 저렇게 여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지금은 프랑스도 은퇴시기와 나이제한 등 노후 보장에 대한 문제로 시끄럽지만 첫 방문의 느낌은 사람들이 무척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주하게 된다. 요즘도 도로나 집수리를 한다고 푯말 세우고는 몇 달씩 길을 막아 돌아 가게 한다. ‘세월아 흘러라’ 식이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환자수녀님 모시고 가게 되면 약속 시간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막상 함께 타고 가는 프랑스 수녀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신 듯 한결같은 표정으로 앉아계신다. 이것이 이 문화를 대표하는 똘레랑스라는 걸까? 한번은 열흘간 중·고등 학생들과 캠프를 다녀 온 한국 신부님이 스스로 모든 일을 여유롭게 해결해 나가는 점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인내심(?)에 놀랐다고 한다. 그룹을 리더 하는 학생의 인내와 너그러움, 모든 일을 더불어 함께 해 나가는 모습이 더디게 보이지만, 결국은 실수도 적고, 모두가 리더같이, 공동체 생활을 익히고 즐기는 모습이 좋았단다.

이 기회에 프랑스를 떠올리게 하는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확실히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타인의 사상, 행동, 종교에 대한 이해 관용, 용인, 인정’이라고 나왔다. 프랑스 인들에게 물었더니 역시 똘레랑뜨(관대하게)하게 각자마다 답변의 차이가 있었다. 80대의 연로하신 한 분은 ‘비록 나와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즉시 부정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애쓰며 기다린다’ 는 비교적 긍정적인 설명인데 반해, 30대의 젊은 교사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 라는 뜻인데 본인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외였다. 결국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해야 함이 각자의 몫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이 고려해야 할 것은 너무 급하게, 너무 바쁘게, 살아 온 방식에서 이제는 조금은 똘레랑뜨한 사고로 사람중심의 삶으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남들이 보기에 성공한 삶의 본보기처럼 보였던 스티브 잡스가 임종때 남긴 메세지가 울림을 준다. ‘내 일생 동안 성취한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빠졌던 기억 들 뿐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을 귀하게 여겨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그 동안 우리는 잘 살아 보려고 정말 열심히(너무 바쁘게) 살아 왔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리고 이제쯤은 우리가 여유를 가져도 미안하지 않을 만큼 충실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오늘의 우리 경제가 일어 설 때까지, 근검절약하며 자녀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분 들의 삶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가슴이 아려온다. 이제 남은 생애 여유를 갖고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그야말로 똘레랑뜨한 마음으로 영, 육이 평화롭고 은혜로운 나날이 되길 빌고 싶다.

 
남안나봉자
남안나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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