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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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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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한통의 편지가 왔다. 10년 전 내가 나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였다. 겉봉투는 ‘하동군수’명의의 발신인이 적혀 있고 수신인 란에는 나의 아내와 두 아들의 이름이 익숙한 필체로 또렷하게 씌어 있었다. 10년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당시에 기획계장을 맡고 있었고 군민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2110년에 개봉할 타임캡슐을 하동문화예술회관 앞 광장에 매설했었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그날 모인 사람들은 100년 후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받은 편지는 미니타임캡슐 행사로 10년 후에 개봉하여 발송하는 이벤트였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그리고 나의 분신인 예찬, 기훈에게”내용은 평범했다. 그동안 직장일로 가정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과 두 아들이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과 기대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우리가족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작은 집을 지어 이사도 했고 나는 조기에 퇴직을 하여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두 아들들에게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편지는 기대 이상으로 그들의 길을 잘 걷고 있다.

나라도 바뀌었다. 사람도, 동네도, 하늘과 땅도, 이웃도, 친구도, 세계도 바뀌었다. 어제의 것들이 바뀌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진리도, 정의도 바뀌어가고 있다. 바뀌지 않는 것은 세상은 변한다는 것뿐이다.

이 편지가 감동을 주었다. 내용이 아니라 군수가 바뀌고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었음에도 약속이 지켜졌다는 것 때문이었다. <10년 편지>를 기획할 때만 하더라도 이 편지가 제대로 발송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약속이란 이런 것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생각지도 않았던 편지가 약속이 되어 온 것이다. 1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군청 어느 장소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을 편지캡슐은 편지에 쓴 사연들을 얼마나 잘 지키며 살아가는지 지켜봤을 것이다.

남은 약속이 있다. 앞으로 90년 후 2110년 4월 15일, 우리는 하동문화예술회관 광장으로 가야한다. 죽어도 가야한다. 남은 약속은 그것뿐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포옹하고 안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캡슐을 개봉할 것이다. 100년 동안 온전이 모습을 지키고 있을 타자기, 컴퓨터, 카메라, 사진, 책, 옷… 우리 손으로 모으고 정리를 했던 기록들을 반갑게 만져볼 것이다. 약속은 지키기 위한 것이다.


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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