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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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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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지역문학 연구가요 시인인 박태일 교수 정년하다(4)
오늘은 ‘박태일의 시살이 배움살이’에서 시 한편씩 거론하는 <시 읽기> 두 번째 시로 실린 <폐왕을 위하여 1>을 보기로 한다. 이 시를 감상한 비평가는 김재홍 평론가이다. 일단 시 전문을 읽기로 한다.

“폐왕은 여름에 떠나 가을에 이르렀다/ 나라 망가지니 묵정밭 돼지감자 씨알만 차고/ 불알 마르는 사내를 위해 아낙들은/ 자주 돼지감자를 굽는다// 힘든 일이다 새삼/ 나라 이야기 끝자락을 마무리하기란/ 감실에 묻은 웃대 서책에는 더/ 기댈 길이 없다 귓밥 긴 내림에/ 편편한 발바닥이 늘 부끄러웠던 폐왕// 동쪽 벌 김해는 한달음 눈앞인데 / 떠나오던 길에 밤비 산허리를 끊고/ 얼굴 찧은 딸들이 역사 적는 이를 울렸던가/ 폐왕 나드는 길 사람들이 돌을 쌓고/ 너구리 누린 오줌을 갈겨도/ 어금니 마주쳐 골골 날다람쥐를 부르며/ 붉은 여울돌로 책력을 짐작한다 폐왕// 차선책이 원칙임을 깨닫고부터/ 영 말을 잃어버렸던,”

이 시는 소재가 산청 화계리에 있는 구형왕릉이기에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김재홍 비평가의 단평은 다음과 같다. “1980년 중앙일보로 등단하여 제1회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박태일은 사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삶에 대한 슬프면서도 따뜻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시 <폐왕을 위하여 1>은 소외된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기울이면서 우리말이 지닌 살결과 혼결,숨결과 무ˆˆ결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재홍 비평가는 박태일의 우리말이 지닌 살결과 숨결을 잘 드러내는 시인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역사에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정이 있음을 가리킨다.

그렇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은 사라져 가는 것 중의 하나이다. 필자는 이 구형왕이라고도 하고 양왕이라고도 하는 왕의 무덤이 있는 그 마을 화계리에서 자랐다. 시간이 날 때 자주 찾아가 놀았던 친구들이 생각나고 초등학교때는 그곳으로 소를 몰고 가서 풀어놓고 오후 내내 <뿌레>라는 경기도 했고 그냥 그 아래 왕산천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그 왕산천은 왕산 중턱에 있는 <약물통>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병을 낫게 하는 영험까지 있어서 즐겨 근동에서 물맞으로(목욕) 오는 사람이 많았다. 40대쯤이었을까? 거창에 사는 소설가 표성흠 부부도 물속에서 만났고,부산대학 임종찬 교수는 거기까지는 못오고 시장통까지만 와서 필자를 불러내렸다.

어쨌든 그 구형왕릉에 대해서는 필자 마을 사람들은 다 전해지는 전설 하나씩 각편으로 가지고 있다.

마을 조무래기들이 소먹이로 왔다가 심심하여 거대한 돌무덤 그 위에 올라가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는 그 순간에 소나기가 내렸다든가, 또 무덤 위엔 새가 나르지 않고 근처엔 벌레 한 마리 기어다니지 않는다는 것 등 등 이런 이야기들에 업혀 화계리 아이들은 자라났다. 필자는 만세삼창 이야기를 대학 시절 스승이신 서정주 선생님에게 전해 드렸더니 “아 그것, 시가 되겠네. 한 번 써 보게나”하신 말씀도 있어서 한 두어편 써본 일이 있다.

박태일 시인의 시로 돌아와 보자. 필자는 아직 한 번도 구형왕을 폐왕‘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폐왕‘이면 거제도의 의종 생각이 났다. 그런데 구형왕을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보고 잠시 놀랐다. 시인의 언어는 쓰는 시인에 따라서 새로움을 던져주기도 하고 이미지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보태주기도 한다.가만히 들여다 보며 생각하니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수 있었다. 구형왕 체험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낱말 하나에도 그 자체가 창조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시에서 팩트는 4연의 첫줄 “폐왕 나드는 길 사람들이 돌을 쌓고” 정도인데 다른 부분은 모두 상상과 형상화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시인의 시적 장치에 힘을 입고 있다. 1연은 시적 대상에 접근하기 위한 돼지감자 이야기인데 세심히 읽으면 나라 잃은 시기의 아낙들의 일이고 2연은 구형왕의 나라잃은 시기의 부끄러움을 말하는 대목이다. 3연은 김해에서 화계리까지 오는 왕의 행차이다. 4연은 왕이 죽어 무덤에 묻히는 상황이다. 이런 과정이 상당히 치밀하고 시적 장치도 직설을 피하고 이미지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기량이 높고 심도가 깊은 전력투구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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