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6]오랑주리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6]오랑주리 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0.05.2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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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의 탐스러운 오렌지가 열려있던 온실이 미술관으로 재탄생 했다. 파리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 따뜻한 온기 속에 자라던 오렌지대신 우리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그림만이 우리를 맞이한다.

루브르박물관에서 튈를리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센느강 옆에 자리한 오랑주리 미술관을 만나 볼 수 있다. 오랑주리는 나폴레옹 3세 때 루브르궁과 튈를리 정원에 있던 오렌지 나무를 겨우내 적정온도에서 키우기 위한 온실로 건설되었다. 그 목적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 건물 천장을 유리로 덮어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 내기위해 창문을 없앴다. 오렌지 향이 가득했던 온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전시회, 콘서트, 박람회 등의 장소로 쓰이다가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오늘날 오랑주리 미술관이 미술애호가와 관광객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는 이유에는 미술관의 특이한 역사도 한 몫 하지만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특별한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드가, 르누아르, 세잔, 시슬레 등과 함께 언급되는 모네는 인상파 화가 중 한명으로 근대 미술사에 커다란 혁명을 일으킨 화가로 알려져 있다. 모네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그가 추구했던 방식과 ‘인상주의’라는 예술 사조를 짚고 넘어 가야 한다.



◇인상주의

‘첫 인상이 어때?’ 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해 질 때가 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람, 사물, 풍경 등을 본 나의 느낌을 말로써 표현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리 내가 느낀 감정이라 할지라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도 있게 마련이거니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은 셀 수 없이 많다. 사전적인 용어의 ‘인상’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을 일컫는다. 보통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상은 순간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어떤 대상에 대한 순간적인 느낌과 감정을 어떻게 그림에 표현 할까? 번뜩 생각난 느낌, 재빠르게 변화하는 어떤 것에 집중하여 그림으로 나타내려면 구도를 파악하여 보이는 물체나 풍경을 똑같이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는 빛과 계절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변화에 집중하여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 이것은 곧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사과는 빨갛다’라는 말은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생겨난 것일 뿐,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식탁위의 사과는 빨간색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빛에 의해 변화하는 색에 집중하여 인상을 포착하겠다는 의지는 자연스레 화가들을 바깥으로 이끌었다. 모네를 비롯해 르누아르, 시슬레 등은 실내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 했지만 저마다의 개성과 작업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그렇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을 한 몸에 받았을까? 새로운 것이 시도될 때에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비판적 의견이 생기게 마련이듯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프랑스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살롱전’으로 불리던 전시회에서 주목을 받아야 했다. 살롱전에 거부된 작품들을 따로 모아 ‘낙선전’이 따로 열릴 정도였으니 살롱전이 화가들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위치를 가졌는지 쉽게 가늠이 가능하다. 번번히 살롱전에서 낙방 하는 화가들은 당시 프랑스 미술계가 선호하던 고전적 그림 스타일에서 벗어나있거나 지나치게 개성이 뚜렷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작업실을 벗어나 빛과 자연을 쫓아다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것들처럼 말이다. 결국 1874년에는 살롱전에서 인정받지 못한 화가들끼리 모여 첫 독립 전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성공의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들끼리 똘똘 뭉쳤던 이 전시는 ‘제1회 무명예술가 협회전’을 첫 시작으로 1886년 까지 총 8차례나 열렸다. 첫 전시회는 무명화가들이 제도권의 관행에 대한 반감을 표출 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오늘날 이들을 ‘인상주의’화가 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계기가 마련했다. 전시장을 찾았던 신문기자 중 한명이 모네의 전시작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 rising)’을 보고 조롱을 섞어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 말았다며 이 그림에는 인상만 있다는 비평을 쏟았는데 이것이 모네를 비롯한 무명 화가들을 인상주의라고 지칭 하는 말로 굳어졌다.



◇모네의 수련

간혹 나라간의 교류나 다양한 전시를 위해 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다른 나라로 건너가 전시되기도 하지만, 모네의 수련 시리즈만큼은 잠깐의 출타도 힘들 것 같다. 전 세계의 어느 미술관에서도 수련 시리즈가 걸려있는 오랑주리의 전시실처럼 작품과 관람객들의 어우러진 조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네는 수련으로부터 어떠한 인상을 받았던 것일까? 화려한 색채나 감각적인 구도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이 그림을 두고 사람들이 그토록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간히 작품을 팔아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던 모네는 그의 인생 말년부터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모네의 그림에 열광했고 그 인기는 프랑스를 넘어서 세계 각 국에까지 이른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서 인생의 후반부를 보낸 모네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매우 열정을 쏟았다. 모네의 정원은 곧 그의 그림 주제가 되었고, 특히 연못 위를 가득 메운 수련은 250여점이 넘는 작품을 탄생 시켰다.

여덟 점의 수련 시리즈가 오랑주리에서 전시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네의 친구이자 정치인이었던 클레망소의 역할이 컸다. 그는 모네의 수련을 전시하기 위한 특별 공간을 마련하자고 주장했고, 모네는 높이 2미터에 가까운 대형 캔버스를 사용해 약 10년 동안 이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두 개의 타원형 전시실에 걸린 모네의 수련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도록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액자 앞에 가까이 서서 그림을 들여다보던 기존 감상법이 이곳과는 맞지 않다. 관람객들은 전시실을 걸으면서 색채의 변화를 감상할 수도 있고, 먼발치에 서서 전체벽면을 감싸고 있는 그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느껴볼 수도 있다. 모네는 오랫동안 애착을 쏟았던 자신의 그림들이 미술관에 걸리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평생 동안 눈의 기능을 너무 많이 혹사 시킨 탓이었을까. 시력이 감퇴하기 시작한 모네는 백내장을 앓은 채 후반부의 작품을 모두 소화해냈다. 모네는 화가로써의 최대 불행을 얻었지만 그 불행이 결코 그림에 대한 굳은 의지는 꺾지 못했다. 86세의 삶을 살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자그마치 2000여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오랑주리를 나와 화가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로 향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이젤 앞에 앉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던 모네가 아니던가. 고요하던 연못 위에 반짝 비친 오후의 햇살을 직접 마주할 때 모네가 그토록 담고 싶어 했던 ‘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 성인 9유로, 18세 이하 무료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화요일 휴관)

주소: Place de la Concorde 75001 Paris

홈페이지: https://www.musee-orangeri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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