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란 (수필가)
오월이면 이모 집 정원의 담장 위에는 연분홍 장미꽃이 눈부셨다. 금실이 좋은 두 분은 요양병원에서도 부러움을 샀다. 병상에 계시는 이모에게 씻어주고 닦아주던 이모부였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모는 의식이 없다.
고등학교 때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주로 전학을 오면서 이모 집에서 지냈다. 이모는 성모님의 자애로운 마음처럼 언제나 포근하고 다정했다. ‘잘 살아야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쓰다듬어 주었다.
이모 집 정원은 백합이 피고 지곤 했다. 어머니는 백합을 고향 집 마당에 옮겨다 심었다. 그해 여름 무심코 창문을 열다 탄성을 질렀다. 어둠 속에 드러난 하얀 꽃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진 별 무더기처럼 빛났다. 청초한 모습으로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마당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가 그토록 가꾸고 싶어 했던 정원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경탄스러웠다. 어머니는 낭만과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철 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 좁은 철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본다. 한눈에 볼 수가 없다. 현관 쪽 목단은 꽃이 피고 졌겠다. 이모부와 이모를 모시고 화원에 들러 구해다 심은 꽃나무다. 결혼 후, 이모하고는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딸처럼 여기는 이모와는 친정엄마처럼 살갑게 지냈다. 봄이면 붉은 목단이 활짝 피어 두 분을 기쁘게 하였으니 효자 구실을 했다.
이모가 의식 없이 누워 계실 때 이모부는 애달파했다. “당신이 먼저 가고 내가 뒤에 가야 한다”라고 이모가 항상 하시던 말을 언제부턴가 이모부가 하시더니 홀연히 떠나셨다. 폐렴으로 입원 한 달 만이었다. 병실을 찾았을 때 빨리 일어나야 한다고, 이모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만 기력이 떨어질 뿐 정신은 젊은 사람보다 더 맑았었다. 언제나 해바라기를 하던 이모부는 이모를 두고 편히 가셨을까.
이모는 지금까지 수고한 큰 며느리를 떠나 부산 작은아들 곁으로 갔다. 그곳 요양병원에서 지내는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가족들은 이모부의 죽음을 충격 받을까 봐 알리지 않았다. 미동하지 않는 이모는 희미한 끈을 잡고 종일 병상에서 이모부를 기다리실까. 이모를 뵌 지도 오래되었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그나마 얼굴이라도 자주 들여다봤다. 해마다 다가오는 생신이나 어버이날을 코로나로 그냥 넘긴다.
주인을 잃은 정원의 화초들은 생기를 잃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시골 마당의 백합은 몇 년 만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올해 이모 집 장미꽃에 새순이 돋지 않았다. 주인을 기다리다 애가 말랐을까. 꼭 닫힌 정원은 고요하다. 다시, 오월이 오면 장미 덩굴은 연분홍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허정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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