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프랑스의 종교분쟁과 위그노의 두뇌유출
[김흥길의 경제이야기]프랑스의 종교분쟁과 위그노의 두뇌유출
  • 경남일보
  • 승인 2020.05.3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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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엽 이후 프랑스에서는 신교파와 카톨릭교의 양 집단은 발루와(Valois) 왕실의 약체를 이용하여 왕권에 압박을 가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루터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꺌뱅(Jean Calvin)은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매우 깊고 험난한 여파를 남겼다. 당시 프랑스의 신교도, 이른바 위그노(Huguenots) 중에는 국왕의 중앙집권화 정책으로 통치권 혹은 자치권 박탈의 위협을 느끼던 일부 대귀족과 지방 토호세력 그리고 도시의 주민집단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절대주의 권위를 내세우는 카톨릭교에 맞서서 위그노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꺌뱅주의의 확산은 1550~1560년경에 가속화 되었다. 이 당시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나바르 왕 부르봉(Bourbon) 가문을 필두로 많은 왕족 내지 대귀족들이 꺌뱅주의자, 즉 위그노로 개종하여 프랑스의 신교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꺌뱅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앙리 2세는 여러 차례 탄압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무장귀족의 보호를 받는 위그노들의 집회는 중단되지 않았다. 앙리 2세가 죽은 이후 40년 간 왕위 계승의 위기가 계속되었는데, 그 아들들이 병약할 뿐만 아니라 후사가 없었던 것이다. 앙리 2세의 큰아들인 병약하고 심약한 프랑수와 2세가 14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귀족들은 개신교도인 위그노와 카톨릭교 신성동맹의 두 집단으로 갈라져 내란을 벌이면서 불안한 왕위를 노렸다.

프랑수와 2세가 죽고 샤를르 9세가 즉위하게 되고 왕실의 주도권은 모후 꺄트린느 드 메디시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꺄트린느는 종교적으로 대립하던 두 집단의 갈등을 역이용하여 왕실의 지위를 굳히려 했지만, 불안정과 동요는 여전하였다. 이후 앙리 4세의 치세가 안정될 때까지 프랑스는 8차례의 내전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카톨릭교도에 의한 3만 명에 달하는 위그노 살육극을 초래했던 1572년의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역시, 신교도인 꼴리니 제독의 샤를 9세에 대한 영향력을 우려한 모후 꺄트린느가 위그노의 지나친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벌인 것이었다.

도시민중과 농민들의 반란과 폭동이 지속되자 이에 경악한 지배계층은 선동과 분쟁을 멈추고 왕권을 중심으로 단합하게 된다. 마침내 앙리 부르봉의 즉위라는 타협을 얻게 되었다. 왕위를 계승한 위그노파의 수장 앙리 4세는 카톨릭 신도의 압도적인 비율을 고려하여 스스로 카톨릭으로 개종했지만, 동시에 낭트칙령을 반포하여 당시 125만 명에 달하던 위그노의 기본권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대표적인 절대 군주 루이 14세는 치세 말기에 종교를 통한 왕국의 완전한 통합을 꾀하여 낭트칙령을 폐기하면서 무조건 캬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명령하게 된다. 무리한 종교적 통합정책은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들을 야기 시키게 된다.

왕명이 떨어진 후 5년간에 걸쳐 최소 20만 명 이상의 위그노들이 프랑스를 빠져나가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으로 이주하게 된다. 위그노들 가운데는 젊은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제철, 염료, 화학 분야의 첨단 기술 보유자들이 많았다. 특별이민법까지 제정하여 위그노들의 ‘기술이민’을 받아들인 영국은 산업혁명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독일은 화학과 기계 산업의 부흥을 꾀하게 되었으며 스위스는 시계제조기술 등 정밀산업 분야의 초석을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해상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네덜란드는 위그노 기술자들이 몰려와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핵심동력이었던 증기기관도 위그노의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하였고, 독일의 거대 화학·제약회사 바이엘의 창업자 프리드리히 바이엘과 메르세데스 벤츠를 세운 카를 벤츠가 독일로 이주한 위그노의 후손들이며 스위스 시계 산업을 부흥시킨 주역도 위그노들이었다.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산업이 뒤진 나라였지만 위그노들을 받아들여 극복의 계기를 마련한 반면에, 프랑스는 두뇌유출(brain drain)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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