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풍 길
아름다운 소풍 길
  • 경남일보
  • 승인 2020.06.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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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오래전, 시가 뭔지 몰랐을 때 처음으로 천상병의 시 ‘귀천’은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했다. 성당 지하 강당에서 한 편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계단을 잇는 모서리 벽면에서 시속의 화자는 파란 하늘과 구름 속에 노닐고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귀천(歸天)

‘귀천’은 죽음을 의미한다. 화자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한다. 이슬과 노을빛과 함께 놀다가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웠다’라고 산뜻하게 말한다. 화자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삶의 한 과정이자 연장선으로 본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 없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게 죽음은 춥고 슬픈, 어두운 그림자였다. 철들 무렵부터 죽음의 그림자는 내 옆을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때 친형제인 큰 오라버니의 죽음과 맞닥트렸다. 스물아홉의 오빠를 떠 올리면 가슴이 무너지기가 부지기수였다. 그의 꿈을 꾸고 나면 명치끝이 저려 와 한기로 몸을 떨었다.

화자는 삶 자체를 ‘소풍’에 비유한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죽음을 달관한다. 세상에의 욕망과 집착을 초월한다.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고달팠던 삶을 맑고 담백한 어조로 훌쩍 뛰어넘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삶과 죽음을 하나의 연속성임을 에둘러 말한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결코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삶의 한 과정으로 생명이 다하면 하늘로 돌아가는 순리라고 한다. 어른이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죽음을 바라볼 무렵 어머니의 죽음은 만나게 된다.

푸른 솔이었던 큰 오라버니는 남은 생명에 최선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면, 아흔의 어머니는 순리대로 서서히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는, 죽음을 준비하는 백발 어머니의 모습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자식들에게 보내던 절절한 사랑의 눈길도 거두어갔다. 고요한 눈은 너무 깊어 무엇을 말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두려움 없이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며 하늘로 돌아가셨을까. 망자의 옷을 입고 들국화를 두르고 가는 마지막 모습은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정녕 아름다운 소풍 길이었으리라. 온몸으로 자신을 지킨 순수 시인의 시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허정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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