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 타고 도망간 이야기를 관광 상품화하면?
비거 타고 도망간 이야기를 관광 상품화하면?
  • 경남일보
  • 승인 2020.06.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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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 (진주시의원)
부끄럽다! 왜적에게 성이 함락되자 진주성 성주는 ‘조선의 비행기’, ‘조선 과학자들의 꿈과 정신’을 타고 도망갔다고 한다. 이를 진주시에서는 ‘역사적 문헌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해서 지역관광을 개발하고 경제를 활성화 하겠다’고 한다. 진주성 계사 순의단의 영령이 깜짝 놀랄 일이다.

왜적에게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주성의 성주가 성을 비우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감추어야할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진주시는 지난 1월 ‘비거 관광자원화 활용 방안 공청회’를 개최 했다. ‘우주항공도시로서 산업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비거를 제작해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등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추진됐다’고 했다. 그 이후 진주시는 향후 5년간 망경산 일원에 총 사업비 1270억 투입하여 비거 테마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우주항공도시가 되기 위해서, 관광을 개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우리 시민은 부끄러운 역사의 후손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여도 조상들의 행적을 부끄럽게 하면서까지 그런 사업을 해야 할까?

하지만 진주시의 ‘비거’ 관련 사업은 지금도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진주시에서 발간하는 ‘촉석루’ 3월호에는 ‘조선의 비행기 비거 진주성을 날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4월호에는 ‘비거 전망대 설치, 비거 플라잉 체험시설, 비거역사 전시관, 비거 열기구 타기, 비거비행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비거 모형 관광 상품도 개발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텔레비전 광고까지 하고 있다. 그 광고를 보면서 평화의 댐을 만들고자 국회의사당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여 주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평화의 땜은 어떻게 되었는가?

근대 20세기 문헌(조선어문경위 1924 권덕규, 고사통 1943 최남선,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 1991, 한국사 1962 이상백)에 등장하는 ‘진주성을 나는 비거’ 얘기는 성주 피신용 비거였다. 진주 목사가 왜적에게 포위된 성을 비거 타고 탈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나 19세기 이전의 문헌 ‘여암유고 신경준(1712-1781), 오주연문장전산고 이규경 (1788-1856)’에는 비거 얘기가 나오지만 비거가 진주의 하늘을 날았다거나 임진왜란 때 진주 목사를 태우고 도망갔다는 기록은 아예 없다. 그러니까 진주시의 비거사업은 옛 문헌을 바탕으로 왜곡되고 부풀어진 1900년 이후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제비가 물어다 준 흥부네 박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졌다고 그 박의 종자를 복원하겠다고 국민의 혈세를 쓰겠다는 얘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4월 28일 진주시의회에서는 추경으로 올라온 ‘비거, 하늘을 날다 행사비 2700만 원, 비거제작 및 안정성 평가 용역비 5000만 원’을 삭감시켰다.

비거 논란을 잠재우려면 역사적 자료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 정말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한점 부끄럼 없는 ‘조선의 비행기’, ‘진주성을 나는 비행기’로 인정받도록 관련 학자들을 초청해서 학술대회를 개최하면 될 일이다.

비거의 존재(be sein)를 증명하고 나서 사업의 당위(must sollen)를 주장하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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