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다
무너지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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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협)대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에 하나는 삶을 마감하고 초연히 떨어지는 꽃잎과 나무이파리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깃털보다 더 가는 이파리가 바람에 실려 흔들, 흔들 계단 밟고 내려오는 모습은 미의 절정이다. 떨어진 나무이파리 밟고 서면 내 발 밑에서 꿈틀거리는 생명, 생명은 지금부터라는 말을 해 주려는 듯하다.

무너지다, 라는 말이 예전엔 이처럼 아름다운 줄 몰랐다. 떨어지다, 라는 말이 이처럼 생동감 있고 사랑스러운 말인지 몰랐다. 놀란 가슴에 심장이 무너지고 소식 없던 그로부터 전화한통이 어쩜 이렇게 가슴 쿵 무너지게 하는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이다. 무너짐은 곧 시작이요 끝의 시작이다. 그 시작은 시작하게 그대로 두어야 끝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니 무너지는 것은 꿈틀거림이다. 약동이다. 외침이다. 호흡이다. 무너짐이 없는 것은 멸망이다. 사기다. 거짓이고 폭망이다.

무너지는 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을 복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복원은 가장이다. 가면이다. 죽은 사람 대신 세워놓은 마네킹이다. 웃음도 울음도 표정도 없는 몰 인간이다. 어느 고을이나 할 것 없이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각 잡히고 화려하고 새파란 기운의 가장행렬에 흥미를 잃는다. 화려한 화장과 역겨운 분 냄새, 죽은 시체에 발라 놓은 총천연색 화장이다.

차라리 살아 있는 것은 무너진 채 살려둔 쓰러짐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어느 신전은 무너져 있음으로 세워져 있고 생명을 지니고 있다. 로마의 포룸은 무너져 있음으로 원로원들의 연설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그리젠또 신전계곡은 신전들이 쓰러져 있음으로 살아 있다. 무너져 있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복원하여 입을 막아 버렸고 박제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도시에 가면 2천 년이 넘은 성곽을 복원해 놓았다. 어느 도시 뿐 아니다. 어느 도시나 그렇다.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청돌 모서리에 몸서리가 쳐지고 바람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이 항변은 무엇인가. 복원은 파괴요 살인교사다.

무너짐이란 그렇다. 그대로 두면 다시 살아난다. 누군가 와서 살아 있음에 감동 할 것이다. 어루만져주고 위하여 노래하고 시를 쓸 것이다. 오래될수록 숙성되는 술과 같을 것이다. 그 때가 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인위를 가하지 말고 참아야 한다. 무너진 당신도 그렇다. 그대로 둬야 한다. 무너져야 노래하고 시를 쓰고 ‘새’힘을 얻을 수 있다. 무너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시가 있다.

조문환/하동주민공정여행(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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