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4)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4)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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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지역문학 연구가요 시인인 박태일 교수 정년하다(6)
박태일 교수의 ‘지역 인문학-경남, 부산 따져 읽기’에 나오는 려증동 교수 저서에 대한 서평을 읽고 있는 중이다. 려증동 교수의 ‘거짓이여 물러가라’에 대해 박 교수는 계속 언급해 나간다. “이 책에는 지난 시기 만났던 사람, 겪었던 일들 이야기까지 오롯하다. 고스란히 진주 지역이며 겨레 정신사다.(중략) 경상대학교는 배달말학회와 모국어교육학회를 갖춘 곳이다. 나라 안팎에서 배달 이름이 환하다. 경상대학교가 짐계 선생으로 우뚝하고 진주가 뒷날 짐계학으로 자랑스러우리라.

사람이란 조직이든 옳고 그름을 따르지 않는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제 이익과 손해를 헤아릴 따름이다. 유유상종한다. 그러나 어찌 세상이 바르기를 바랄 것인가. 그럼에도 멀리 보면 사정이 그렇지만은 않다. 사필귀정, 선생이 온몸으로 가르쳐 주신 바다. 눈 맑고 심지 굳은 이에게는 선생의 배움이 두고 두고 새로우리라. 세상을 바로잡고자 한 사람을 일컬어 별이라 했던가. 혼탁한 세상에서 선생 홀로 높다란 별임을 아는 이 얼마랴.

박 교수가 여기까지 쓴 것을 두고 필자는 참 아름다운 서평이라 생각하면서 한 분 학자를 제값으로 어찌 다 평가할 수 있을까 마는 박 교수는 그 생각함이 바다와 같다. 출신교도 다르고 봉직하고 있었던 곳도 다른데 학자의 높이와 깊이를 새삼 짚고 밝히어서 그 밝힘 자체가 등을 켜는 일이니 그 학문하는 이의 자세가 남다름을 알게 된다.

이쯤에서 필자도 대학에서 려 교수님을 선배 교수로 모시고 말석에서 공부했던 은혜로운 때가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밝힌다. 사실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가 창립된 이래 려증동, 김수업 두 분 교수가 중심이 되어 학과를 완성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대 학과들이 기존의 인문대학이나 자연대학에 있는 동일성 학과와 차이를 두고 연구를 총력으로 매진하였다. 그중 국어교육과에서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와 구별되는 국어교육학을 수립하기 위해 국어교육론이란 기본 과제를 일찍이 풀어내었는데 그 시초가 려증동의 <국어교육론> <한국어문교육> 등이었다 물론 이런 지향은 학과 교수들의 연찬회를 통해 확충하고 다지고 하는 것에서 학문 공동체의 산물이 되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사범대학에서 처음 배달말, 배달말 교육, 그 교육론 등에 방점이 주어졌다. 거기서 다시 모국어교육학회로 나아갔다. 제 나라말 교육은 남의 나라 말 교육하듯이 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서부터였다. 국어문법을 가르치는데 영어문법 방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얼마후 경상대 국어교육과는 처음으로 인문대학 국문과와는 다른 명실상부 사대 교과과정을 지니게 되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어느 대학 사대 국어과 학생들이 전국 국어교육과 랭킹을 투표로 결정했을 때 ‘1위 경상대 국어과, 2위부터 10위까지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결과의 선두에 려증동, 김수업 교수가 서고 후속 교수들이 뜻을 맞추면서 그 내실이 귿어져 갔다.

려증동 교수는 ‘한국어문교육’을 저술한 뒤 그 속에 있는 내용은 기존의 학자들이 이룬 학문적 성과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부분이 많아서 어쩌면 려교수의 저서는 언제나 태풍의 눈과 같았다 이 책이 나온 뒤 우리나라 국문학 연구의 실력자 J박사는 려교수에게 답장을 보내기를 “선생님의 저술은 바로 저를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끝을 맺었다. 박 교수의 짐계선생 이야기 끝에 그 아름다움이 필자의 가슴에 닿아 지나간 주변 이야기를 보태었다. 어쨌든 려증동, 김수업 두 교수가 선두에 서서 이룬 한국의 국립대 국어교육의 이룸이 더 빛나기 위해 여러 사업이 후속으로 따라 주기를 기대한다.

박 교수의 칼럼 중에서 두 번째 눈에 띄는 글이 <악한 덕술이도 문인이었다네>였다. 악질 부왜 경찰의 대표 본보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을 모르긴 하되 짐계선생이 읽으셨다면 무릎을 탁 쳤으리라 여겨졌다. 박교수의 둘째 대목부터 보자. “을유광복 뒤 덕술은 수도청 수사과장으로 낯빛을 바꾸었다. 중앙 경찰 수사통 간부로서 위세를 떨쳤다. 그러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잡혔다. 특위가 흐지부지 되는 바람에 풀려났다. 전쟁을 틈타 군 헌병대 장교로 변신했다. 부산 제2범죄수사대장으로 지내다 1954년 서울 육군 헌병사령부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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