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장수가 있는 풍경
뻥튀기장수가 있는 풍경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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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우리 동네는 며칠에 한 번씩 뻥튀기장수가 온다. 경운기를 개조한 이동식 뻥튀기 차는 수레에 뻥튀기기계 두벌과 팔기 위해 튀겨놓은 뻥튀기를 가득 싣고 다닌다. 펼친 뻥튀기전은 푸짐하지만 가격은 소박하다. 종류에 관계없이 큰 베개만한 비닐봉지 당 2000원인데 3봉지는 5000원으로 깎아준다. 요즘같이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데 누가 사먹으랴 생각했지만 나이 지긋한 양반들이 뻥튀기기계 옆에 둘러서서 맛보기에 손을 내민다. 아마도 추억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들고 오는 강냉이나 쌀을 튀겨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콩이나 누룽지를 튀기기도 한다. 젊은 아낙들은 음료차를 만들려는 지 옥수수나 보리를 볶아간다. 그는 한곳에서 장사를 하는 붙박이가 아니다.

옛날에도 마을마을 떠돌다가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언제나 우시장 근처에서 터 잡고 뻥튀기를 팔던 아저씨가 있었다. 맛보기 인심이 좋았던 아저씨가 생각나 이곳 뻥튀기장수와 말을 섞어보고 싶었다. 뻥튀기아저씨는 공터에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접근성이 좋은 아파트 단지 옆 큰길가 인도 등에 쫓겨 다니 듯 전을 펼친다.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오래된 뻥튀기기계 철망 색깔만큼이나 새카맣게 탄 얼굴인데 볼 때마다 몹시 불안해했다. 장사가 안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선지 궁금했었다. 뻥튀기를 사게 되면 물어봐야지 하면서도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오늘은 집사람이 누룽지를 좀 튀겨오라기에 그와 말할 기회가 있었다. 건네준 누룽지 봉지를 받아서 바가지에 담으며 양을 가늠하는 그에게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물을까 하다 왜 하필 오늘은 외진 곳에서 장사를 하냐고 말을 바꾸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아차 묻지 말아야했나 후회했다.

그는 한참을 초점 없는 눈으로 아파트단지를 멀거니 바라보더니 생뚱맞게 “그래도 이 기계랑 반평생을 같이하며 자식 여섯을 키워냈는데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지. 근데 뻥튀기란 것이 한군데 앉아서 할 수 있는 장사라야 말이지. 옛날 같으면 어른이건 아이건 할 것 없이 보름간에 한차례씩 들려도 또 언제 오냐고 성화를 댔는데 요즘은 부지런히 옮겨 다녀야 겨우 몇 사람이 찾아오니. 게다가 인근 아파트 경비도 지나가는 순경도 민원이다 소음공해다 하면서 가는 데마다 못 오게 하니 원”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지도 않은 머쓱함에 맛보기 한주먹을 집으며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뻥튀기 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죠”하면서 뻥튀기 값 1000원을 얼른 건넸다. 고층 아파트 사이로 하얀 낮달이 나지막이 떠있었다.

이덕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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