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
따뜻한 시선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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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 교사)
얼마 전에 올해 명퇴하신 선생님을 만나 요즘의 근황에 대한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평소 학생들에게 다양한 재능을 길러 주는데 열정을 쏟고 계셨던 분이라 ‘명퇴’를 했다는 게 의아스럽기만 했었다. 그 분이 선생님이라 교사로만 생각하고 한 가정의 어머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예능을 전공하는 두 딸을 뒷바라지 하고 최근 결혼까지 시키느라 가정의 여력을 모두 쏟으시고 내리신 결정이라 했다.

누구의 삶에든 다 이야기가 있다. 조근 조근 그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 스스로의 잣대로 삶이 힘겹다 불평하기도 했던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처녀시절 거문고를 배웠었는데 자식 낳고 뒷바라지 하느라 접어두고 살았다 했다. 명퇴를 하고 어느 찻집에 전시되어 있던 거문고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접어두었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거문고를 보고 가슴이 뛰어서 밤새 잠 못 이루고 다음 날 카페가 문을 열기도 전에 쫓아가서 기다렸다 거문고를 안고 나왔다는 그 분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내 가슴이 설렌다. 자신의 삶에 의지를 놓지 않았던 분이라 명퇴 후의 삶 또한 어떠하리란 걸 미리 알기에 세상 무엇보다 큰 축하의 마음으로 그 분의 앞길을 축복해 주고 싶다. 나는 그 분을 ‘거문고 여인’이라 혼자 불렀다. 내 삶이 고단할 때마다 학생과 자식의 인생을 살피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던 여자의 충실함을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다독일 것이다.

학교엔 기다리고 기다리던 등교가 시작 되었다. 만반의 준비로 등교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걱정이 되어 함께 급식을 하지 않겠다던 학생도 추이를 보고 함께 급식을 하게 되었고 가정학습으로 자녀를 보호하겠다던 학생들도 학교로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늘 염려는 있지만 함께 해서 더 즐겁다는 아이들 말을 들을 때마다 함께 즐거워진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의 만족도 생각해야 하는 교육공동체이다. 학생들의 등교 준비가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니 민원 전화 또한 시작되고 있다. 민원은 주로 학생들의 생활지도 쪽에서 생겨나지만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것들도 있다.

민원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학교교육이 100%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단지 민원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시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원에 감정을 실으면 소통의 긍정적 효과는 감축되기 마련이다. 불만의 표출을 위한 민원은 문제의 해결 보다 더 많은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할 수도 있다.

당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시작은 교육공동체로서 서로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사는 늘 여러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다. 밤늦은 시간의 전화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수업 중 전화는 자칫 감정이 정리 되지 못한 상태로 학생들 앞에 서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학부모는 시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부모의 입장이 되어 보자. 대부분 직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이미 늦은 시간일 수 있다. 학교의 상황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전해 듣는 말로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사정도 고려해 보자. 무엇보다 교사에겐 돌보아야 할 여러 학생이 있고 부모에겐 소중한 한 자식이 있다는 차이도 생각해 보자. 그러다 보면 민원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사가 내 마음 같이 내 자식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케어해 줄 것인지 불안하다는 부모의 마음이며,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에서 출발해서 그렇게 해 달라는 부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 일학년 아기 같은 아이들을 마스크 낀 얼굴로 만나 2주 보냈다. 그 중에 쉬는 시간에 중년의 선생님을 공주로 그려서 선물하는 아이가 있다. 낱낱이 그려 넣으며 마음을 담는 삶의 감동이 전달된다. 그 아이는 선생님을 아껴 주고 싶은 행복한 마음을 가졌다. 학교생활 또한 행복할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움으로 이 아이가 오래 오래 학교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교육공동체의 지혜를 모을 수 있길 빌어 본다.

 
허미선 (시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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