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색인가, 전문가인가
당색인가, 전문가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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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조선 후기의 시작은 인조반정(1623) 때부터라고 생각된다. 남들이 인정하건 말건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이 정변의 역사적 의미는 도덕적인 판단에 따라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고, 권력에 눈먼 서인이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 있다. 이 성공은 결과적으로 볼 때 경술년의 국치인 한일합방(1910) 때까지 이어졌다.

조선 후기 287년 중에서 282년에 걸쳐 초록이 동색인 단일 계통의 정치 집단인 서인, 여기에서 분당한 노론, 노론계의 세도가가 조선 사회를 지배해 왔다. 집권한 햇수를 백분율로 보면, 이 단일 세력이 집권한 비율은 무려 97%에 이른다. 3년을 집권한 소인과 5년을 집권한 남인을 합해도, 고작 3%에 지나지 않는다. 경남 합천 출신의 정인홍이 인조반정 때 처형을 당한 이후, 북인(계)은 단 한 차례도 권력의 맛을 보지 못했다. 한일합방의 바로 직전에야 정인홍의 정치적인 사후 복권이 이루어졌다. 지금의 경남 지역과 대부분 겹쳐지는 경상우도는 조선 후기 근 300년 동안 정치적으로 초토화된 곳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마디로 말해 당색(黨色)에 있었던 거다.

대저 당색이란 무엇인가? 저 망국의 당색은 정치적인 ‘끼리 집단’을 가리킨다. 이 끼리 집단이 정치적인 결집의 과도함으로 인해 폐쇄화되면 될수록, 정치 수준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정신적인 ‘또래 집단’으로 황폐화된다. 조선 후기와 비슷한 시기를 일본사에는 소위 에도(江戶) 시대라고 한다. 에도 시대는 지금의 각 분야 전문가를 의미하는 직인(職人)을 우대했다. 당색에 집착한 조선 후기가 조선을 망하게 했고, 에도 시대의 이런 경험은, 나라가 전쟁에서 패하고도 일본인들에게 고도성장과 번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난국에 빠져 있다. 국내뿐 아니라 전(全)지구적인 난세이니 전염병을 한 예로 들어 보자. 괴질의 세계사를 살펴하면, 천연두가 가장 인류를 괴롭혔다.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광범위했다. 천연두에 대응한 한국사의 영웅은 세 사람이 손꼽힌다. 허준과 정약용과 지석영이다. 이 모두는 일반인들도 알 만한 사람이다. 허준은 당색이 그런 대로 엷은 광해군 때 왕의 천연두를 치료해 당색이 없는 중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상관(고위직)이 되었다. 어릴 때 본인이 고생했고 여섯 자녀를 희생시킨 정약용은 천연두에 대한 연구에 골몰해 ‘마과회통’(1798)이란 저서를 냈다. 다만, 이론에 치우쳐 실제의 효능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는 양반 폐족이어서 살아생전에 이러저러한 정책 대안의 뜻을 펴지 못했다. 대한제국 시기의 지석영은 종두법을 받아들여 치료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비록 중인이어도 동래부사 등 늘그막에 이르기까지 사회 공직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보다 천연두 정복사에 더 기여한 사람이 있었다. 17세기 후반의 유상이다. 그는 조선조 최고의 두의(痘醫)였다. 두의란, 천연두 전문의를 말한다. 그는 숙종·경종·영조 세 부자(父子) 왕을 천연두의 죽음으로부터 구해냈다. 임금 세 사람을 구해냈다면, 크게 입신했어야 하는데, 당색 없는 중인 출신인 그에게 조정은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못했다. 치료법은커녕 삶의 이력마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당색은 출신 성분이다. 괴질보다 무섭다. 개인의 육체를 병들게 할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병들게 해서다. 현 정권도 특정의 당색,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을 보상할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중용해 임기 후반의 난국, 난세를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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