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5)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5)
  • 경남일보
  • 승인 2020.06.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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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지역문학 연구가이자 시인인 박태일 교수 정년하다(7)
 
지난 호에 이어 <악한 덕술이도 문인이었다네>의 박 교수의 글 이어진다, “부산제2범죄수사대장으로 지내다 육군 헌병사령부로 옮겨 갔다. 부산에서 저질렀던 미군수물자 횡령이 들통나 1955년 파면당했다. 그뒤 정치 마당을 기웃거렸다. 1960년 울산 민의원 선거에 나섰다 떨어졌다. 서울에서 흥신소를 차렸으나 비리로 붙잡히기도 했다. 1968년에 죽었다. 그런데 평생 나라를 배신하고 겨레를 괴롭혔던 악한 덕술이도 문학을 했다. 제법 격을 지닌 양 묵림이나 무호(無號)라 호까지 내돌렸다. 대표 작품이 1954년 부산시 기관지 ‘부산시론’ 창간호에 실었던 시조 <술회>다. ‘울산을 생각하니 이 마음이 울울하다/ 천마산 떠나가며 앙천탄식 길게 한다/ 장부도 비무루(非無淚)라고 말한 이는 누구뇨// 강동에 팔천 제자 기다리고 있건마는/ 오강에 흐르는 물 영웅한을 자아내니/ 슬프다 권토중래를 타일 어이 바라리// 대지를 품에 품고 통할 길을 찾았건만/통할 수 있는 일도 덮어놓고 못 통하니/ 암루(暗淚)를 천만행이나 뿌려놓고 가노라’ 덕술의 악행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큰 포부를 지녔던 지사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서는 심회로 읽힐 성싶다. 부산을 떠나면서 남긴 글이다. 스스로 권토중래를 꿈꾸는 장부라 했고 영웅과 동일시 했다. 그래서 영웅만이 남는다고 지껄였다.(중략)…<술회>는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준다. 덕술 같은 부왜배가 공무원 기관지에 문학인으로 자랑스럽게 나돌아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 무렵 지역 풍토다. 다른 하나는 겉으로 알려진 문학인과 문학도 실체를 따지면 얼마나 허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순 해 앞서 있었던 일이다.”

‘지역 인문학’에서 세 번쩨 눈길이 가는 글은 <초승달 시인 허민>이다. 허민은 1930년대 시인이자 소설가인데 1943년 29세때 요절했다. 참 이까운 지역의 대들보였다. .박태일 교수의 글을 따라가 보자. “허민은 보통학교 졸업 학력이 모두다. 그럼에도 드러난 문학 활동은 활발했다. 그는 1914년 사천 곤양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사흘만에 섬진강에서 놀다 아버지가 스물 넷 나이로 요절했다. 열아홉 청상이 된 어머니는 구박에 가난에 쫓기며 살았다. 합천 해인사 비구니절 삼선암 가까이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를 따라 허민도 열여섯 살인 1929년에 가야산으로 들어왔다. 이듬해 해인사 강원에 입학하여 불교를 배우는 한 편 문학에도 눈을 떴다. 1933년부터 해인사 사설강습소의 교원으로 일했다. 허민이 문학사회에 이름을 내건 때는 스물 두 살인 1936년부터다. 매일신문 현상문예에 소설 <구룡산>이 당선한 것이다.이듬해 진주로 가 동아일보 진주지국 기자로 머물렀다. 그 일도 잠시 깊어진 폐결핵 탓에 1938년 가야산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병중에도 열정을 다해 1940년에는 시가, 1941년에는 소설이 잇달아 ‘문장’에 추천되었다. 장차 큰 문인이 될 재목임을 널리 알렸던 셈이다. 왜경으로부터 민족주의자, 반왜사상가로 지목되어 여러 차례 집을 수색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난리를 쳤다. 병만 나으면 구속하려고 지역 왜경이 벼르고 있었던 대상이 허민이었다. 스물 아홉때인 1943년 봄 그는 고요히 해인사 다비장으로 옮겨졌다. 다행인 점은 잃어버릴 위험 앞에서도 맏아들 허은이 어렵사리 유고 일부를 간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열 세해에 걸쳐 쓴 시 소설 동화 수필 328편이 오늘날 우리 앞에 남을 수 있었다. 중략 글벗 손풍산은 ‘다재다능하고 다기다예’ 했다고 허민을 되새겼다. 해인사 사설강습소에서 허민에게 배운 소설가 최인욱은 그를 초승달 ‘흐릿한 봄밤에 서산마루 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줄도 모르게 사라진 초승달’ 같은 사람이라 그리워했다. 나라 잃은 시대 말기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부왜 문학만 있었던 게 아니다. 찾기에 따라 아직 세상 눈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제2의 윤동주, 제3의 허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참담한 시대 우리 문학사를 환하게 밝혀 준 뜨거운 불꽃들이다.”

필자는 박태일교수가 편집한 허민전집(현대문학)을 기본 텍스트로 오는 7월 4일 ‘찾아가는 경남문학 기행’ 합천 행사에서 주제 발표를 한다. <허민의 시와 소설>이 그 논제이다. 박교수가 만일 부지런하지 못해 이 전집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 필자는 허민 연구라는 기가 막히는 재미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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