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45]함양 대봉산 계관봉
명산 플러스 [245]함양 대봉산 계관봉
  • 최창민
  • 승인 2020.06.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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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 알고 보면 조망 맛집
암릉지대
암릉지대

10년 전 처음 대봉산 천왕봉을 찾았을 때 우듬지에서 은방울처럼 반짝이는 상고대에 감탄했다. 5년전 두 번째 찾았을 때 잔뜩 낀 안개만 보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대봉산 천왕봉이 아닌 계관봉(1254m)으로 갔다. 이 봉은 대봉산 2봉으로 형세가 닭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닭계(鷄)자를 쓴다. 닭벼슬같은 독특한 형세를 볼수 있는 곳은 통영∼대전고속도로 상(上)서하면 부근이다. 고속도로 남서쪽에 계관봉이 히어로인양 불쑥 솟아 있다.

이번에 천왕봉과 계관봉엘 한꺼번에 오르려고 함양군 병곡면 대봉산 자연휴양림을 찾았으나 이곳에서 만난 관리인은 천왕봉 부근에 수만볼트 전기를 사용하는 모노레일과 짚라인 공사를 해 갈수 없다고 겁을 줬다. 그러면서 원산리→계관봉으로 가기를 권했다.

 

계관봉
계관봉

계관봉에서 대봉산의 진면목을 봤다. 초록숲에 숨었다가 솟아오른 것인양 봉긋봉긋한 화강암꾸러미는 여름 한 철 열매를 맺는 깨금알맹이처럼 앙증맞고 예뻤다. 숨 막힐 듯이 이어지는 암릉지대산행에선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에는 굵은 땀이 흘렀다.

암봉에 섰을 때 운곡리 방향 암릉 끝에 염소 한 쌍이 여유롭게 앉아있었다. 이 염소는 5m가까이 접근했을 때까지도 도망가지 않았다. 이들은 사람이 신기한 듯 사진 모델까지 돼 줬다. 이 산에는 토끼도 살아 있었다. 지금은 거의 멸종하다시피 해 신기한 동물이 돼버린 야생 산토끼를 코앞에서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야말로 대봉산 계관봉은 아름답기도 하면서 아직 야생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등산로; 함양군 병곡면 원산리 원산마을→빼빼재∼감투산∼천왕봉 주릉·1030m봉(헬기장)→계관봉·천왕봉갈림길→계관봉→암릉지대→암릉지대2→선바위→운곡리 은행나무→운곡리 은행마을 하산. 8.8㎞, 휴식포함 5시간 소요.

▲원산목장 출발 후 뒤편 깊은 곳까지 MTB도로가 뚫려 있다. MTB도로 중간에 차량통제 바리케이드가 있고 30m정도 더 진행하면 왼쪽에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열려 있다. 바로 옆에 숲속 원두막도 보인다.

풀이 발목을 잡고, 키 높이까지 올라온 숲이 얼굴을 스친다. 50m정도 올랐을 때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갈림길이 나온다. 팁 하나, 이곳에서 직진하지 말고 오른쪽 길을 택해 사면을 오른 뒤 능선을 타고 올라야한다. 계곡 길은 희미해 고생을 감수해야한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 30여분 만에 헬기장이 있는 1030m봉에 닿는다. 왼쪽 빼빼재·감투산에서 오른쪽 대봉산 천왕봉을 연결하는 주릉이다. 빼빼재 3,2㎞이고 진행방향 천왕봉까지는 2,3㎞이다. 헬기장 해발이 1030m인만큼 1250m인 계관봉·천왕봉 갈림길까지 고도를 제법 높여야 한다. 실제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 마루금은 눈 위에 있다.

 

누운소나무
누운소나무

등산로 옆 풀섶에 눈길이 갔다. 평소 야생 동물에 관심이 많은 탓에 산행 중 들꿩 고라니 멧돼지 뱀 등 동물들을 자주 목격하는 터였다. 이날은 토끼였다. 잔뜩 웅크린 채 숨을 쉬느라 배만 볼록거리며 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촬영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토끼는 달아났다. 정말 눈 깜짝 하는 사이에 토끼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워낙 빨라서 셔터 350분의 1초도 초점이 흐려 있었다. 잠자는 걸 깨운 게 미안했지만 사실은 살아 있는 야생토끼를 발견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요즘 산토끼는 삵에게 새끼를 빼앗겨서 거의 사라졌고 뱀은 이상 번식한 멧돼지의 먹잇감신세를 면치못하고 있다.

그늘잎 가는사초(산거울)가 자라는 평평한 안부를 지난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원시적인 풍경이다. 산거울의 꽃말은 강인함이다. 그래서 돌틈 사이나 비탈진 나무뿌리 곁에서도 잘 자란다. 유년의 여자 아이들은 머리카락처럼 생긴 이 산거울로 머리땋기놀이를 즐겼다.

통신시설을 지나 천왕봉·계관봉 갈림길에 닿는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10분정도 진행하면 계관봉 정상석을 만날 수 있다.


낭떠러지 정면에 서면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선명하다. 천왕봉에는 전망대 모노레일 공사로 통행이 원활하지 않다.

계관봉에서 암릉지대로 가는 길에는 수형이 특이한 누운 소나무가 있다. 등로 상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밟힌다. 뿌리를 잘못 내려 밟힐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당국에서는 이 소나무 보호를 위해 데크계단을 우회 설치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 내려 힘이 드는 판국인데 사람들까지 밟고 지나가니 미물이라도 아플 터이다.

이 산이 자랑하는 암릉 길은 이곳에서 20여분 간 계속된다. 화강암으로 유명한 합천 부암산 암릉 길보다 세배는 더 길고 화려하다. 천혜의 명품 조망에 저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이런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암릉이 숨어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연속된 암릉을 걸을 때면 아찔하고 위태롭고 오금이 저린다. 위험하기 때문에 주행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먼 산의 조망은 통영∼대전고속도로 너머 함양 황석산과 거망산이다. 반대편 머나 먼 곳 거대한 산 실루엣은 전남 장안산이다.

 

 

가까운 곳 시야가 닿는 마지막 암릉 끝에 흑염소 두 마리가 보였다. 산행 중 짠냄새가 진동한 이유가 녀석들 때문이란 걸 대번에 알수 있었다. 산 아래 독가촌 등에서 키우던 염소가 가출해 산꼭대기까지 올라온 것들이다. 이 염소는 5m까지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람이 올라오지 못할 꼭대기에 있다는 걸 아는 것인지, 사람에게 친숙해서인지는 몰라도 태연했다.

바위를 좋아하는 탓에 다시 내려가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염소 똥으로 인해 진동하는 냄새는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암릉의 잔치가 끝나는 곳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말고 왼쪽으로 내려서야한다.

길은 고도를 낮추다가 두 번째 암릉으로 연결된다. 첫 번째 암릉보다 규모는 작아도 카메라를 놓지 못할 정도로 구도가 잘 잡히는 장면들이 연속된다.

암릉의 마지막 부근에 기묘하게도 남근석을 닮은 독립된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 바위를 지나면 급한 경사도를 따라 고도를 급격히 낮춘다. 하산 길에선 산죽지대가 나타났다가 사라진 뒤 솔숲·갈참나무숲이 이어진다. 운곡보건진료소·은행마을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800년수령의 운곡리 느티나무
800년수령의 운곡리 느티나무

운곡리 은행나무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406호로 800년 수령을 자랑한다. 높이 38m에 가슴높이 나무 둘레가 8.75m로 장정 5사람이 안아도 남는다. 이 마을이 생기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은행정이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을 생김새가 배의 형상이고 은행나무는 돛대역할을 한다고. 옛날에 나무 옆에 우물을 팠는데 송아지가 빠져 죽자 사람들은 ‘배 밑에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결국 우물을 다시 메움으로써 평온함을 되찾았다고 한다. 마을의 상징물이자 마을을 지켜주는 전형적인 신목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높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정일에 평안과 풍년을 비는 당제를 지낸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800년수령의 운곡리 은행나무
800년수령의 운곡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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