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지만…”
“일면식도 없지만…”
  • 백지영
  • 승인 2020.06.2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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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장례를 못 치르고 있어서 도울 방법을 수소문 중이에요.”

진주에서 같은 국적 노동자에게 피살된 태국인 남성의 아내 A(33·태국)씨가 비용 문제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경찰에게서 들은 시점은 사건 발생 나흘 후인 지난달 25일.

지난달 21일 진주시 금곡면 한 비닐하우스에서 태국인 남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만 해도 ‘그 후’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A씨가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병원비와 안치비, 화장비와 항공료 등 500만 원 안팎의 비용이 필요했지만 갑자기 마련하기는 힘들었다.

범죄 피해자가 심사를 거쳐 법적으로 지원 받을 수 있는 장례비 등은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자국 대사관에도 도움을 청해봤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한국어 의사소통이 힘든 탓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막막해하는 A씨 앞에 한 한국-태국 국제결혼 부부가 나타났다.

태국 지인을 통해 A씨 사연을 전해 들었다고는 하지만 일면식도 없던 그야말로 ‘남’이었다. 김해에서 태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 부부는 매장 영업을 접고 곧장 진주로 달려왔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 진주경찰서는 물론 서울에 있는 태국대사관까지 동행하며 A씨 대신 필요한 정보나 구비 서류를 알아봐 주고 통역을 자청했다.

A씨의 사연을 접한 지역사회가 온정의 손길을 보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을 때는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김해에 있는 식당으로 달려가 태국 음식을 준비해와 영정 사진 앞에 놓았다.

본보 보도 이후 한 독자가 익명으로 소정의 후원금을 송금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는 얘기를 전하니 자신들이 개입되는 건 조심스럽다며 경찰을 경유할 것을 권했다.

부부는 지난달 30일 A씨가 인천공항에서 남편의 유골함을 안고 출국하던 날까지 수일간 곁을 지켰다.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를 위해 수일간 생업을 포기하고 뒷바라지에 나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픔을 안은 채 한국을 떠나는 A씨의 마지막 며칠이 외롭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해준 부부에게 박수를 보낸다.

백지영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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