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7]세잔의 아틀리에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7]세잔의 아틀리에
  • 경남일보
  • 승인 2020.06.2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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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한 은둔자의 작업실
 
날씨가 여름의 최절정을 향해 달리던 무렵 마주한 남프랑스의 첫인상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한낮 기온 40도를 넘나들게 만드는 햇볕은 사람의 혼을 쏙 빼 놓았지만 피할 수 없는 여름의 선물이기도 했다.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거리에는 태양의 화끈한 맛을 즐기려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사람들은 어쩐지 더위를 피하기보다 반기는 눈치였다. 피부가 타지 않도록 창이 넓은 모자와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가린 내 차림새가 나를 더욱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 같아 햇볕을 용감하게 대면하기로 했다.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름휴가지로 손꼽히는 남프랑스 지역에는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니스를 비롯하여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칸, 마르세유, 아비뇽, 아를 등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도시들이 밀집해있다. 진정한 프랑스를 여행하고 싶다면 남프랑스로 향하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곳의 뜨거운 열기는 에펠탑과 루브르만으로 가득 차 있던 프랑스의 이미지를 밀어내기 충분했고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세잔의 고향, 액상 프로방스

그 중에서도 화가 세잔(Paul Czanne)의 고향 액상 프로방스는 마르세유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도시다. 액스(Aix)라고 통용되는 이 도시는 라틴어로 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도시 곳곳에 자리한 분수가 물의 도시임을 증명한다.

도시 중심 광장으로 들어서면 액상 프로방스를 상징하는 호톤드 분수와 함께 그림도구를 잔뜩 짊어진 화가 세잔의 동상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광장 근처의 관광안내소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해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된 안내책자를 구비하고 있으며 안내소는 다양한 관광투어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근교 지역의 들판을 보랏빛으로 가득 메우는 라벤더 밭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앞서 언급한대로 액상 프로방스는 화가 폴 세잔이 태어나고 마지막 여생을 보낸 도시다.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잔의 표지판을 따라 가다 보면 화가의 발자취와 흔적이 묻은 장소 등을 마주 하게 된다. 특별히 방문해야 하는 곳이 있다면 세잔이 말년에 그림에 대한 마지막 열정을 쏟아 부은 그의 화실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의 이름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브루크너나 말러쯤 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듯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고흐나 모네는 쉽게 떠올리지만 세잔은 좀처럼 멀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세잔의 그림을 좋아 합니다’라고 얘기한다면 이 사람 그림 좀 아는 모양인데 라는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세잔은 모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파들과 동시대를 살며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를 인상주의 화가라고 여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세잔의 그림은 19세기 당시 이단아라고 평가받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 어떤 작품보다 훨씬 더 혁신적이었고 오히려 인상주의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1839년 태어난 세잔은 유년기와 20대를 줄 곧 엑상 프로방스에서 보냈다. 은행가로써 성공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늘 생계걱정에 시달려야 했던 동료 화가들과는 달리 세잔 곁에는 늘 든든한 버팀목이 존재 했다. 세잔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학을 공부하여 자신의 뒤를 잇는 꿈을 꾸었지만, 세잔의 마음속에서는 화가라는 꿈이 싹트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고 예술이 화려하게 꽃피던 파리로 갔지만 남쪽 지방 청년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인지 큰 실망을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세잔은 초기 작품에서 매우 어두운 색상을 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피사로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조우하면서 부터는 밝은 색상을 즐겨 사용하기 시작했고 실외에 이젤을 펼쳐 직접 마주한 바깥 풍경을 그렸다.

세잔은 훗날 그의 부인이 된 호르텐스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세잔에게 매달 주어지던 지원금이 끊길 것을 우려해 호르텐스 와의 사이에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숨겨야 했다. 세잔이 그린 초상화에 곧 잘 등장하는 세잔의 부인은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의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던 세잔의 괴팍한 성질을 받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잔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는 평생 한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로맨틱한 화가의 붓질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림 앞에서 그의 아내는 그저 한 명의 여자일 뿐이었다. 세잔의 작품들은 여러 전시회에 걸리게 되면서 조금씩 그만의 스타일과 명성을 드러냈다. 세잔이 사용했던 물체를 보는 다방면의 시선 처리나, 색채의 사용, 사물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처리하는 방법 등은 이미 새로운 예술 사조로 접어 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고 젊은 화가들과 관람객들은 점차 세잔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세잔의 아틀리에

세잔의 화실로 가기 위해서는 꽤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그렇지만 길을 잃을 만하면 보이는 안내 표지판 때문에 지도가 필요 없었으며, 목적지가 같아 보이는 사람들의 뒤를 따르는 것도 가능했다.

1901년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자리한 빌라를 구입한 세잔은 그 2층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세잔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매일같이 집과 화실을 오가며 오늘날 그의 가장 대표작이라 손꼽히는 작품들을 완성했다. 세잔이 후기에 즐겨 그렸던 그림은 화실에서도 볼 수 있는 생 빅투아르 산의 풍경과 각종 과일, 사물들로 이루어진 정물화였다.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 다소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세잔의 시각이 한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모습을 그려놓았고, 어떤 것은 정면 혹은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향하게 했을 때 보이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세잔은 단일 시각으로만 구성되어 있던 전통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다중 시각의 구조를 그림에 배치시켜 시각의 다양성을 이끌어냈다. 또한 인상주의를 뛰어넘으려는 그의 시도는 보이는 대상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형태에 집중하며 정확한 묘사나 순간의 분위기를 포착하기보다 형태를 단순화 시킨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컨대, 산의 기본적인 형태는 삼각형인데, 아무리 멋진 나무들로 둘러싸인 산이라고 할지라도 산이라는 것은 삼각형 덩어리로 기억된다. 이처럼 세잔은 보이는 모든 것들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바꾸어 단순화 시켰다.

그의 작품 스타일은 추상화로의 발전을 이끌어 내며 20세기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인상주의 이후 나타난 야수파와 입체파의 대표화가 마티스, 피카소는 세잔을 자신들의 스승이자 아버지로 여겼다. 인상주의에서 새로운 예술사조로 넘어가는 경계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세잔이 세상을 떠나고 주인을 잃은 작업실은 15년 동안이나 굳게 닫힌 채 방치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작업실에는 세잔이 정물화를 그릴 때 사용했던 각종 모형과 도구들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화실은 세잔을 추모하던 이들이 힘을 합쳐 구입하면서 대중들에게 공개될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의 관람은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제로 운영되며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세잔과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만나 볼 수 있다.



관람시간: 9:30 am to 6 pm(계절별로 상이)

입장료: 성인 6.5유로

주소: 9 Avenue Paul C?zanne, 13100 Aix-en-Provence

홈페이지: http://www.cezanne-en-provence.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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