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7)
  • 경남일보
  • 승인 2020.07.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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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교육계의 별 허만길 박사의 살아온 길(2)
허만길은 자라면서 아버지가 주도했던 아사히 철공소 동맹파업 사건을 감명 깊게 들었다. 일본 본토의 무기공장에서 항일적 성격의 조선인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고 감히 동맹파업으로 무기 공장에서 가동을 멈추게 하여 일본의 여러 신문에 보도될 정도였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허만길은 이 사건을 생각하며 아버지의 항일정신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는 뒷날 허만길에게 잠재적인 교훈으로 작용하였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두 가지 일을 들어보자. 첫 번째는 허박사가 1990년 광복후 최초로 상해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정식 국교가 없던 시기에 1990년 6월 문교부 중앙교육연수원 장학사로서 교원 국외 연수단을 인솔하여 중국 상해에 가서 임시정부가 있던 자리를 찾게 되었다. 6월 13일 국외 연수 마지막 날이었다. 상해의 한 작은 거리에 불과한 마당로(馬當路)를 향했다.

마당로 306롱1, 306롱 2 등 외곽으로 된 문들에 우리의 번지와 호수에 해당하는 표시가 골목 안쪽으로 계속되었다. 북경대학 한국어과 출신 중국인 안내원은 마당로 306롱1, 306롱2가 우리의 임시정부 자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들으면서 허박사는 혼란에 빠졌다. 이미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임시정부 자리가 상해 마당로 306롱 4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원은 306롱1과 306롱 2가 틀림없다고 거듭 말하는 것 아닌가.

허박사는 306롱 2의 집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잠겨 있었다. 306롱 1의 집문을 두드리니 10평 정도의 어둑한 집안에서 머리가 허연 노파가 나왔다. 중국인 안내원에게 물어본 결과 이 집은 김 구선생이 중국을 떠날 때 중국인 친구에게 넘겨 주었으며 그 중국인은 홍콩에 살고 있는데 현재 주거인은 그 중국인의 삼촌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 노파는 그 중국인의 숙모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임시정부 자리는 아무 표적 하나 없이 퇴색된 집으로 초라하게 근근이 남아 있었다. 허만길 연수단장은 차에 오르지마자 단원들에게 현장 즉흥시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를 읊었다.

“이만큼이나 큰/ 조국의 고동이도록/ 우렁찬 걸음이도록/ 세계로 지구로 뻗는/ 희망찬 역사의 함성이도록// 먼 이국의 땅 상하이 마당로 306/ 한 낡은 자리 그리도 구석진 자리에서/ 우리의 옛 임들/ 그리도 가늘게/ 그리도 허덕이며/ 우리를 지켰을 줄이야/ 우리를 살았을 줄이야/ 우리를 키웠을 줄이야// 아, 통곡으로 피로/ 울며 외치며 쓰러지며/ 단군을, 김유신을, 세종을, 서산대사를/ 이어 주었을 줄이야 // 이곳 이웃들에게도/ 까맣게 진실이 끊어진/ 조그만 가게 옆 골목/ 한 허름한 집/ 집지기 백발 노파가 쓸쓸한/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중략)// 내 조국 내 겨레 얼룩진/ 거룩한 자리/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 우리가 버려둔 자리”(1990. 6.13)

허 박사는 귀국하자마자 상해 임시정부 자리 및 해외 애국 유적지 보존운동을 광복 후 최초로 벌여나갔다. 임시정부 자리 보존과 표시에 대해서는 상해시장에게 협조 요청 편지를 보냈다. 허박사는 1990년 6월 30일자로 ‘임시정부 자리 보존을 위해 국민에게 드리는 마음의 글’이라는 유인물을 만들어 각계각층에 돌렸다. 현장 즉흥시는 1990년 7월 2일자 주간교육신문에 실었다. 그리고 국민 호소문을 중앙지에 보내 실었다. 한국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이었다.

허 박사의 이런 노력이 있자 각 언론과 국민들은 크게 공감하였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상해 임시정부 자리 보존에 대해 공식적으로 중국측에 의사 표시를 하게 되었다. 1993년에 상해 임시정부 자리는 상당히 보수, 단장되고 상해를 들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앞에 소개한 시 ‘상하이 임시정부 자리’는 일본어로 번역이 되어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시인들의 사화집에 실렸고 ‘시와 숲길 항일 민족시인 추모 공원의 허만길 시비’에 조각되어 역사 자료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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