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길이 되어가는 것
서로가 길이 되어가는 것
  • 경남일보
  • 승인 2020.07.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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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재 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곧게 자란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휘어져 기형적인 모습을 한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곧고 굵직하게 자라는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은 임업적(林業的) 사고를 하는 사람이고, 기형적인 모습을 한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경적(造景的)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게 자라고 굵게 자란 나무는 목재 가치가 높겠지요. 나무를 잘라 판재나 각재로 켰을 때 버려지는 부분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거죠. 그러나 휘어지고 구불구불 자란 나무는 경관적 가치가 높겠지요. 목재 가치는 별로일 거예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나무의 가치가 달라지는 거죠. 분재라는 걸 생각해볼까요. 화원에 아름답게 잘 꾸며놓은 소나무 분재를 한 번 생각해보죠.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분재는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그새 말라버릴 거예요. 죽음이 기다리는 거죠. 왜냐면 그 나무가 기댈 수 있는 토양이 그만큼 없기 때문이에요. 토양이 보유하고 있는 물이 적기 때문에 지속해서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하지요. 그래서 분재를 키우는 사람은 멀리 가는 여행은 쉽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으면 되겠지만 그런 상황도 안 된다면 매일 물을 줘야 하니까요. 게으른 사람은 분재 키우기가 쉽지 않은 거죠.

어른들이 이따금 그런 말을 해요. ‘모자란 자식이 효도한다’고요. 잘 나고 똑똑한 자식은 서울로, 좋은 곳으로 떠나버리고 조금 못난 자식이 어디 가지 못하고 부모 곁에 남아 효도한다고 말이지요. 나무도 마찬가지랍니다. 못 생기고 휘어지고 구부러진 나무는 눈에 띄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지만 크고 통직한 나무는 벌목꾼 눈에 띄어 금방 베어지기 때문이죠. 물론 요즘엔 숲 가꾸기로 못난 나무들이 먼저 베어지기도 하지만 말이죠.

노동운동가로 시작해 시인이 된 박노해의 ‘서로가 길이 되어가는 것’이란 시가 있어요. ‘올 곱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 일직선으로 뚫린 바른길보다는 / 산 따라 물 따라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 곧은 길 끊어져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 돌아서지 마십시오 // 삶은 가는 것입니다. /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면 /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거창군에 가면 거창고등학교가 있어요. 거기 가면 초대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글이 강당 게시문에 적혀있어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라고요. 첫째가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등 열 가지죠. 모두 읽어보면 ‘잘 되지 말라고 하는 건가!’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그게 아니랍니다.

산길이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던가요? 구불구불 돌아가기도 하고, 올랐다 내려갔다 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재미로 산을 오른다고 하더군요. 이리 휘고 저리 휘고 올랐다 내려갔다 눈에 훤히 보이는 길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의 새로운 것들을 보는 재미로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늦다고 아쉬워할 필요 없어요. 빨리 간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요. 언젠가는 종착지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요. 아니, 종착지는 다 같을 테니까요.

세계가 코로나19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숲으로 가셔서 숲길도 걷고 평온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숲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자연스레 행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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