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여행밥상] 서울 청량리, 메뉴 한가지 혜성칼국수
[박재현의 여행밥상] 서울 청량리, 메뉴 한가지 혜성칼국수
  • 경남일보
  • 승인 2020.07.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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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한가지, 딱 칼국수만 파는 서울 청량리 혜성칼국수.

사람의 음식 선호도에는 두 가지로 나뉜다. 밥을 좋아하냐, 면을 좋아하냐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밥 좋아하는 사람에게 면을 주면 타박 받기 십상이다. 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밥을 주면 일상적으로 삼시 세끼 먹는 밥이니 그렇겠거니 하지만, 면을 주면 아주 좋아한다. 내가 그렇다. 나는 밥보다 면을 좋아한다. 후딱 먹기도 쉽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하여, 밥은 정말 드물게 먹는다. 20년 전부터 하루 한 끼를 주장하고 그저 배고프면 먹는다는 주의자인데, 밥보다는 면을 좋아해 면이면 무조건 오케이다.

면은 종류도 많다. 라면, 국수, 칼국수 등 대체로 밀가루 음식이다.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 살이 잘 찐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거 두렵지 않다. 그저 먹기 편하면 좋다. 면의 장점은 또 있다. 반찬은 김치나 콩나물 같은 한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밥처럼 국부터 반찬까지 한상 차려내지 않아도 되니 상차림도 수월하다. 어떤 사람은 면은 금방 꺼진다고 하지만 면이 그렇게 쉽게 꺼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먹느냐가 관건이다.

혜성칼국숫집은 내가 임업연구원(현 국립산림과학원)에 근무할 때 알게 된 집이다. 직장에서 버스 한 정거장을 타고 나오면 있다. 청량리역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메뉴는 칼국수뿐이다. 칼국수도 닭칼국수와 멸치 칼국수가 전부다. 반찬은 딱 하나, 배추 겉절이다. 다진 양념이 곁들여 있지만, 김치를 국수에 얹어 먹으면 국물이 벌겋게 되어 다진 양념을 넣을 필요가 없다. 나중에 먹는 국물은 그래서 더욱 얼큰하고 시원하다. 칼국수를 시키면 먼저 김치와 빈 양은그릇이 두 개 따라 나온다. 하나는 덜어 먹으라는 거고, 하나는 물을 따라 먹으라는 거다. 그러나 나는 둘 다 사용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칼국수에 김치를 얹어 먹으니 사용할 필요가 없는 거다. 개중 하나는 나중에 입가심으로 물을 먹을 때나 쓸까. 그러니 내가 가면 설거지 거리가 줄어들어 주인은 좋아할지도 모른다.

 
파스타 면발의 잘 익힌 정도를 말하는 ‘알덴테’라고 해야 할지, 탱탱한 칼국수 면발이 쫀쫀하게 살아 있다.
1968년. 혜성칼국수가 생긴 해다. 그때는 가난해서 그랬는지 칼국숫집이 잘 되었을 성싶다. 지금도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이면 줄을 서야 한다. 한길에 기다랗게 줄이 서 있으면 ‘저 집은 맛집이구나’를 저절로 알 수 있다. 손님이 앉는 식탁에 한 사람 자리가 있으면 줄 지어선 사람 중에 혼자 온 사람이 앉는다. 일면식도 없지만 다들 그렇게 먹으니 계면쩍지도 않다.

칼국수는 역시 국물맛이다. 면발도 아주 중요하다. 먼저 국물맛은 시원하다. 뜨거운데 시원하다니 그게 한국인의 정서니 어쩌랴. 걸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정갈하게 깔끔한 류도 아니다. 걸쭉과 깔끔의 중간정도랄까. 국물맛을 보면 밀가루가 퍼진 맛은 나지 않고, 멸치를 많이 넣어 우려낸 맛, 그것이다. 닭칼국수도 국물맛은 비슷한데, 닭고기를 찢어서 고명으로 얹은 것이 다를 뿐이다. 면발은 또 어떤가. 일단 면발이 굵다. 웬만한 손짜장 굵기랄까. 단면이 직사각형이라고 할까. 길죽하게 썬 직사각형이라고 해야 맞다. 면발은 ‘살아있다’는 말이 딱이다. 완전히 익어 퍼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뭐랄까 씹는 맛이 살아있다. 어쩌면 약간 덜 익은 느낌도 살짝 든다. 그러나 덜 익은 것이 아니다. 생김치라고 나온 얼큰한 겉절이와 궁합이 딱 맞는다.

한 그릇을 다 못 먹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넉넉하게 준다. 냉면 그릇 정도에 그득하게 나오니 말이다. 그러나 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걸 다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반 그릇이나 한 그릇을 더 시킨다. 그건 공짜다. 그래서 배부르게 먹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 줄 서서 기다리지만 반 그릇, 한 그릇을 더 시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어도 50%는 된다. 알아둘 것은 칼국수가 나오고 한창 먹을 때 즉, 1/3 정도 먹었을 때 더 먹을 수 있나 생각해보고 반 그릇이나 한 그릇을 더 시켜야 한다. 끓일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면 한 그릇을 다 비웠을 때 더 시킨 게 나온다. 그러면 먹던 기분을 연장해서 먹을 수 있다. 한 그릇 다 먹고 나서 추가로 시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맛이 반감된다. 왜냐면 잘 먹고 나서 한참 기다리는 건 고역이기 때문이다. 입맛이 달아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사실 한 그릇에 8000 원인 칼국수가 비싼 건 아닌 거다. 보통 나 같은 사람은 두 그릇을 비우니 말이다. 물론 18년 전에는 4000 원이었는데, 그 사이 두 배가 올랐다.

 
뜨겁고도 시원한 국물맛, 한국사람만 아는 그 맛이다. 김치반찬 하나면 한그릇이 뚝딱이다.
어느 곳이나 칼국수 유명한 집이 많다. 명동 칼국수는 이미 브랜드가 되어 있다. 시골에서도 명동 칼국수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 가면 명동 칼국수보다 나는 이곳 혜성칼국수가 더 좋다. 공짜로 한 그릇 더 주는 맛도 있지만 일단, 김치가 싱싱하고 또 국물맛이 정말 시원하기 때문이다. 평소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인데, 사실 한 여름 혜성칼국수를 먹으면 땀범벅이다. 하여, 수건 하나는 가지고 가는게 필수다. 어쩌다 수건이 없으면, 식탁에 놓인 냅킨이 동난다. 그래도 좋다. 귀찮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 여름에도 줄 서서 먹는 곳이니 맛집은 분명 맛집이다. 이따금 땀범벅이 되어 다른 식탁에서 진공청소기처럼 칼국수를 흡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저리도 땀 안 흘리고 잘 먹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이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옛 직장에 회의가 있거나 그쪽으로 갈 때면 나는 배를 한껏 비워둔다. 두 그릇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땀 뻘뻘 흘리며 말이다. 얼마나 시원한지, 배가 불룩 일어서도 ‘아이고 배불러!’ 한참을 그러고 다녀도 말이다.



※ 혜성칼국수 :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50-18

※ 전화 : 02-967-6918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줄서서 먹는 맛집은 빈자리가 나면 ‘나홀로 손님’이 얼른 채워서 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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