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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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7.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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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교육계의 별 허만길 박사의 살아온 길(3)
허만길 박사가 상해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을 펴고 난 뒤 잊혀져 가고 있는 일제 정신대(종군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키는 운동을 시작했다. 일제때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대는 근로정신대와 종군위안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정신대’란 말은 1944년 8월 일본 국왕이 칙령으로 내린 ‘여자 정신 근로령’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허만길 박사는 아버지에게서 들은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가 어떤 문헌이나 정치적 현안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허만길 박사는 이 문제를 주제로 한 최초의 단편소설 <원주민촌의 축제>를 1990년 10월 5일 한글문학 12집에 발표하였다. 단편 <원주민촌의 축제>는 정신대 문제를 국내외의 역사적 관심사로 환기시키는 주요 발단을 이루었다.

이 작품은 반세기 동안의 시간적 배경에 한국, 만주, 중국, 타이완 등을 공간적 배경으로 활용한다. 일제때 남편을 독립군으로 보낸 20대의 신들린 한국여인 (너복새댁)이 다섯 살 난 딸을 남기고 정신대로 끌려간다. 중국 연변에서 간신히 탈출, 어느 독립군의 도움으로 중상 입은 남편을 찾아 임종을 본다. 그러나 여인은 조국 광복이 되어도 빼앗긴 몸에 대한 죄책감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국·공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타이완으로 건너가 어느 높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실신해 있던 중 그곳 원주민촌의 여자 제사장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여인은 마침내 제사장 자리를 물려받아 40년간 한국의 무격문화를 접목해 가며 신전을 이끌어간다. 여인은 처음 몸을 빼앗긴 날에 산 사람으로서 스스로 장례식을 당한 뒤 다시 살아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을 ‘죽살이잔치’라 하고서 해마다 그 의식을 치른다.

1989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한민족 체육대회 때 중국거주 교포 가무단원인 연변 독립군의 손녀(사미주)가 여인(너복새댁)이 독립군의 아들에게 보낸 주소도 없는 때묻은 편지를 들고 서을을 방문한다. 독립군의 손녀는 안부 편지와 원추형 모양들이 흩어져 있는 그림 한 장을 한국 적십자사의 도움으로 서울의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하고 있는 여인(너복새댁)의 외손녀애게 전달한다.

여인의 외손녀는 타이완으로 가서 끈질긴 추적 끝에 1990년 원주민의 축제일 ‘죽살이 잔칫날’인 8월 13일 외할머니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한글문학회 안장현 회장은 “<원주민촌의 축제>는 문학사에 길이 기록될 수작이다”라 했고 구인환 교수는 “일제의 압정에 항쟁하며 독립의 열매를 키우던 치열한 삶이 해외동포의 고국방문이란 연결고리로 외손인 민속학도에 의해 그 신비가 벗겨지는 충격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추리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성으로 치밀하게 서사의 핵을 구조화하는 기법이 좋다.”고 했다.

이 작품이 발표된지 1년 뒤 1991년 11월 30일 한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됨을 계기로 허만길 박사는 ‘정신대 위령의 날’ 제정 및 ‘국제 사람 몸 존중의 날’제정을 각계에 제의하면서 계속 정신대 문제를 국내외 관심사로 환기시킴과 동시에 정신대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에 1992년 1월 언론애서 일제때 12살 초등학교 어린이들마저 정신대에 끌려간 사실이 뚜렷이 들어났다고 하자 그동안 허박사가 제기해온 정신대 문제는 급속도로 국내외의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허박사는 이러한 노력으로 2004년 12월 10일 세계인권기념일 기념식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이 무렵 허박사가 일간지 등에 기고한 글은 다음과 같았다

‘허만길씨, 정신대 위령의 날 제정하자’(한국일보, 1992,1,6)와 보도기사 ‘허만길씨, 정신대 위령의 날 제정 제의’(동아일보, 1992, 1,17), ‘허만길씨 정신대 위령의 날 제의’(조선일보, 1992, 1,18), ‘허만길씨 ‘정신대 위령의 날’ 건의‘(주간경향, 1992, 2, 9). 이런 기사를 보면서 허박사의 ‘겨레사랑운동’의 정신과 그 열의가 얼마나 끓고 있는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일제저항의 정신을 실천으로 이어받은 것이기에 그 가치와 보람도 교육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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