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하동 청계사에 간다
가끔은 하동 청계사에 간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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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작년 이맘때쯤 62일동안 캐나다 전역을 여행하면서 캐나다 국민들의 의식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1년이 지난 오늘의 세상은 온통 코로나 사막으로 뒤덮여 있다. 동양과 서양이 따로 없고, 선진국과 후진국이 따로 없다. 국경도, 인종도, 날씨까지도 초월한다. 오아시스를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다. 이러다 보니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확 바꾸어 놓고 말았다. 사람과의 만남이 서먹서먹하고 꺼려진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전쟁은 적군과 아군이 구별되기에 적군만 섬멸하면 되지만 코로나는 누가 적군인지 누가 아군인지 알 수가 없다. 바로 무증상자가 약 3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무증상 상태에서도 최소한 한명 가까이 밀접 접촉자를 감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피난이라도 갈 수 있지만 코로나는 어디 피난 갈 곳도 없다. 지구촌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날씨에 민감하다. 더우면 시원한 곳으로,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코로나는 마땅히 피신할 곳도 없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홀로 지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람은 끝없이 교류하고 때론 공감하면서 살아가는 움직이는 생명체다. 만남을 통해서 정을 나누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인데 만남이 제한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큰 불행이다. 변함없는 일상이 재미가 없고 권태의 연속이다. 이럴 때는 가끔 도시의 생활에서 일탈을 꿈꾸게 된다. 도시는 인간 삶의 편리와 필요를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제공하고 있다. 인류가 고안해낸 모든 쾌락 역시 도시 안에 들어차 있어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그중 하나를 골라 즐길 수 있다. 또한 도시에는 의식주를 비롯한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요한 모든 문화적 요소들이 모여 언제까지나 우리의 욕구 충족을 보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이 도시 안에서도 때론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낀다. 현대인에게 권태는 일상이 되었다. 도시는 권태를 조장하고 그것을 잊게 만드는 일시적 향락을 제공할 뿐이다.
 
이럴 때 나는 가끔 하동 청계사를 찾아간다. 가을이면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는 북천을 지나 횡천을 넘어 청암에 도착하여 하동호를 끼고 돌아가면 청계사가 나온다. 청계사에서 내려다보는 하동호는 답답하고 막혀있던 내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잠시나마 빡빡한 도시 생활을 잊게 해준다. 언제 찾아가도 환대해 주시는 근엄하고 인자하신 혜안스님이 계신다. 혜안스님은 청계사를 창건하기 위해 말 못할 고충도 많이 겪으시고 고생도 많으셨다. 필자가 처음 이 절을 방문 했을 때 대웅전은 조그만한 판잣집 같았다. 기와 대신 대나무로 지붕으로 올려놓고 대나무로 벽과 울타리로 만들어진 대웅전은 너무 허술하고 초라했다. 그런데 남루한 그 대웅전이 오히려 내 마음을 꽉 잡아 매고 말았다. 나는 부유한 큰 절보다 빈곤한 작은 절을 더 좋아한다. 거기서 더 진실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거만하지 않고 겸손이 있다. 요즈음 이름난 절 주변은 온통 유흥지로 탈바꿈해 버렸다. 절은 속세를 떠나 고즈넉한 곳에 있어야 느낌이 좋다. 청계사는 높은 산 중턱에 있어서 자연에 동화될 수 있고 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나는 불자도 아니지만 청계사에 가면 쫓기는 내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정시켜 준다. 모든 종교가 다 그럴 것이다. 고통과 번뇌를 조금이나마 들어줄 것이다. 비록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속의 종교를 가져보면 어떨까?
 
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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