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전경과 배경
[교단에서]전경과 배경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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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 교사)
학교 뜰에는 봄부터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지고 했다. 마스크 쓰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힘들까 틈틈이 꽃 보러 나갔다. 산수유, 매화, 복수초, 개나리, 벚꽃, 철쭉, 서양수수꽃다리, 원추리, 분홍달맞이꽃, 패랭이, 숨어 피던 감꽃, 석류꽃, 창포, 금계국, 송엽국, 수국, 비비추, 루드베키아, 허브류 꽃들, 연꽃, 배롱나무꽃 등을 아이들과 함께 만났다. 갈 때는 꽃 공부하러 간다고 했는데 꽃은 배경(background)이 되고 그 속에 사는 나비와 벌과 거미, 개미 등을 발견하고 아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못에 연꽃을 보자고 하면 물방개, 개구리, 금붕어, 물거미를 발견하고서는 감탄하고 나무를 보자고 하면 새를 보고 감탄했다. 내겐 꽃이 전경(foreground)이었으나 아이들에게는 배경이 되었다. 그 속에 함께 하고 있었던 곤충들이 전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특히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는 대로 솔직하게 본다. 꽃과 함께했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꿀벌의 부지런함을 배웠고 꿀벌의 양다리에 무겁게 달고 있는 꽃가루를 보면서 꽃을 심는 것이 좋은 일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개미도 함부로 밟지 않고 교실에 찾아온 실잠자리도 내쫓지 않았으며, 창밖에 붙어 있는 어린 사마귀를 보고 고함치지도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뜻대로 곤충이 전경이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학교 일을 돕는 ‘어르신’이 계신다. 다른 분들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맘은 늘 그분을 어르신으로 생각하고 존경하고 있다. 흰머리 성성하고 등이 굽고 작은 체구인데 그분을 만나면 거인을 만난 듯 학교가 꽉 차 보이고 활기가 전해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그때마다 손에는 휴지를 줍는 집게나 짐을 운반하는 손수레가 단짝인 양 늘 함께 있었다. 쓰레기 분류수거장에서 만나게 되면 교실에서 나온 쓰레기를 분류하다가도 얼른 짐을 받아 주신다. 늘 밝은 목소리로 “아이고 허 선생님, 수고하십니다!” 할 때마다 나는 ‘아, 내가 선생님이구나!’ 하고 돌아온다. 나는 그분에게서 삶에 대한 지극한 감사의 마음을 배우는데 그분은 내게 선생님이라 부르신다. 늘 밝은 마음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서 내 맘의 전경에 두고 있는데, 그분은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전경에 두신다.

아이들에게는 자식들 삶에 기꺼이 배경이 되고자 하는 부모님이 있다. 부모님 눈에는 자식이 항상 전경에 놓인 꽃이다. 선생님 또한 아이들을 전경에 두고 한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지극한 마음이 닿아서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또한, 언젠가 스스로가 배경이 되려는 지극한 마음도 가지게 될 것이다. 허미선 (시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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