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31]
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31]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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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물마’에서 ‘빨래말미’까지
오란비(장마)가 이어지고 있는데 일본에서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려서 여러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집이 물에 잠겨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기별을 듣고 난 뒤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비가 많이 내려 목숨을 잃은 분도 계시고 물에 잠긴 곳도 있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물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비가 많이 와서 사람이 다니기 어려울 만큼 땅 위에 넘쳐흐르는 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거나 오래 내리면 길에도 물이 넘치는 때가 있는데 그런 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에 물이 들어올 것 같아 마음대로 걸음을 내딛지 못할 만큼 많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 길에 탈것들이 물마 위를 지나가면 물이 튀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이 뒤집어쓰기도 하기 때문에 탈것을 모는 분들이 마음을 써 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물마 위를 달렸다”, “물마가 졌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물마처럼 길 위를 흐르는 물도 있지만, 마치 땅 속에서 솟아나는 것 같이 보이는 물도 있습니다. 그런 물을 ‘선샘’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요즘과 같은 오란비(장마)철에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빗물이 다시 솟아 나오는 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이 솟아나는 곳을 ‘샘’이라고 하는 건 알겠는데 왜 ‘선샘’이라고 했을까요? 그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속 시원하게 풀이를 해 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요. 이런저런 생각 끝에 ‘선샘’의 ‘선’은 ‘설다’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말 ‘설다’에는 ‘열매, 밥, 술 따위가 제대로 익지 아니하다’라는 뜻이 있거든요. 그래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긴 한데 오래오래 이어서 솟아나는 샘이 아니라 장마철에 반짝 솟아나는 제대로 되지 않은 샘이라서 ‘선샘’이라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거죠. 이건 제 생각이고 똑똑히 아시는 분께서 밝혀 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 비와 아랑곳한 말 가운데 ‘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비가 그쳤다”와 같이 쓰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비가 잠시 그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비가 긋는 듯하더니 다시 내렸다”처럼 오란비(장마)철에 쓸 수 있는 말이지요. 그리고 이 말은 ‘비를 잠시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다’는 뜻으로도 씁니다. 요즘 같은 날이면 아침에는 날씨가 맑았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비를 만나기도 하지요. 그래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그어야만 했던 일을 겪어 본 분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앞서 봄철에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을 알려 드릴 때 ‘꽃보라’라는 말을 알려드린 적이 있는데 생각이 나시는 분들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꽃보라와 비슷한말로 ‘비보라’가 있습니다. ‘꽃보라’가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을 뜻하는 것과 비슷하게 ‘비보라’는 ‘세찬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는 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난 이레(주)에 비가 좀 많이 오는 날 바람까지 세게 불어서 ‘비보라’에 옷이 젖었던 분들은 ‘비보라’라는 말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말로 ‘눈보라’, ‘물보라’도 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 시골 분들은 참 자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비설거지’지요.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가리키는 데 높무리집(아파트)에 사는 분들은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는 일 말고는 비설거지를 할 게 많이 없어서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빨래말미’라는 말도 있습니다. 장마철에 빨래를 말릴 만큼 잠깐 날이 드는 겨를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빨래틀 (세탁기)에 말리개(건조기)까지 다 갖춘 집에서는 걱정이 없겠지만 장마철에 빨래 말리는 게 걱정인 분들께는 자주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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