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니 그들이 부활했다
이름을 부르니 그들이 부활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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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본격적인 6월 항쟁 하루 전날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은 한 달여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끝내 숨졌다. 1987년 7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열렸다. 교정에서 출발하는 운구행렬 옆에는 가로 8미터의 그림이 있었다. 화가 최민화가 장례위원회의 허락을 받고 만화사랑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전날 저녁 밤샘 작업을 한 ‘이한열 부활도-그대 뜬 눈으로’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전투경찰과의 충돌로 부서지고 말았다. 문익환 목사도 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는 청년, 대학생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그 책임의 일부분이 기성세대인 자신에게도 있음을 괴로워했다. 그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이 있은 후 진주교도소에서 정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장례식 전날인 7월 8일 출소하였다. 저명인사들의 순서가 진행된 다음 문익환 목사가 연단에 섰다. 문익환 목사는 그날의 침통한 하늘을 향해 눈을 감더니 조용히 두 팔을 벌였다. 시인 김형수는 이 모습을 ‘문익환 특유의 세계를 섬기는 자세, 언제 봐도 겸허와 순정으로 충만한 그 자세’라고 하였다. 이윽고 처절하게 타 들어가는 목소리로 죽어간 이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여! ……, 김상진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1970년대 초부터 1987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0여 년간 유신과 제5공화국이라는 야만의 시대에 맨몸으로 싸운 스물여섯 명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군부독재와 싸우다 우리 역사의 디딤돌이 된 그들을 아무런 순서 없이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외쳐 불렀다. 땅과 하늘에 대고 외치는 절규였다. 그리고 끝이다. 단 한마디의 군더더기도 없다. 그가 부른 이름들이 고요하게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전태일부터 이한열까지,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을 이끌어 낸 그들은 이미 와 있었다. 그들은 이 순간을 꿈에 그리며 죽어간 사람들이다. 이 연설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은 문익환 목사가 연설을 시작할 때부터 울었으며,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흐느꼈다고 한다. 영화 ‘1987’에서 이름을 다 부른 문익환이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김형민 PD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역사를 바꾼 세계적인 명연설이라고 한다.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가 신고 있던 타이거 운동화가 부산경제진흥원 신발산업진흥센터에 의해 30년 만에 복원, 제작되어 영화에서 이한열 역을 한 강동원과 김태리가 실제 신었던 타이거 운동화 2켤레와 함께 부산 개금동에 개관한 한국신발관 홍보·전시관에 지난 2018년 2월에 진열되었다. 실제로 이한열 열사가 신었던 운동화는 오랜 세월과 함께 크게 손상돼 2015년 미술품복원전문가 김겸 박사의 손을 통해 복원돼 현재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이 복원과정은 소설가 김숨에 의해 장편소설 ‘L의 운동화’로 2016년에 출간되었다. 지난 2020년 6월 10일, 6월항쟁 제33주년 기념식에서 민주주의 발전 유공자로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아버지, 어머니 등 12명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훈받았다.

시인 김춘수가 쓴 ‘꽃’의 한 구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낸 김춘수가 어떤 생각으로 누구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익환 목사가 불러낸 26명의 이름은 우리에게로 다가와 아름다운 꽃으로 부활하였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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