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세계적 명성을 누리게 된 김치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세계적 명성을 누리게 된 김치
  • 경남일보
  • 승인 2020.07.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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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 나는 겉절이 인생이 아닌 농익은 김치 인생을 살아라. 그런데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 그 깊은 맛을 전하는 푹 익은 인생을 살아라. 그러기 위해 오늘도 성질, 고집, 편견을 죽이면서 살아야 한다.” 산청출신으로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인 권오길 선생께서 쓰신 글이다.

그런데 김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따위를 고춧가루, 파, 마늘 따위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를 시킨 음식. 재료와 조리 방법에 따라 많은 종류가 있다’고 풀이되어 있다. 배추김치가 보통 김치의 대명사로 여겨지지만, 배추김치 외에도 숱한 종류의 김치들이 있다. 깍두기, 동치미, 백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순무김치, 열무김치, 겉절이, 묵은지, 깻잎김치, 파김치, 오이소박이, 섞박지... 채소를 절여서 먹는 나라는 꽤나 많은 편이다. 그러나 한 번 절인 채소를 다시 양념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채소절임과는 다른 독자적인 차별성을 갖는다. 사용되는 재료에 있어서도 일부 몇몇 채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가능하다. 그래서 김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요리법과 재료를 사용한 김치가 존재하여 향토음식으로서의 정체성도 지니고 있다.

채소를 소금에 절일 때, 대부분의 미생물은 죽어버리지만 염분에 잘 견디는 내염성 세균인 유산균들만 남아서 김치를 익힌다. 아주 잘 익은 김치에는 유익한 유산균이 99%나 되고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가 1% 정도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김치를 오래두면 시어지면서 유산균이 점점 죽어서 줄어들고, 그동안 숨어 지내던 곰팡이무리들이 득세하면서 김치에서 군내가 나고 국물이 초가 되어간다. 아주 시어진 묵은 김치는 유산균이 다 죽어버리고 부패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튼 한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김치의 독특한 맛과 풍부한 유산균을 생성해내는 김장을 담그는 전통과 노하우가 높이 평가되면서, 2013년 10월 23일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권고 받고 같은 해 12월 5일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김장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는 상업적인 이용을 우려하여 음식 자체를 등재하지 않기에 김치가 등재된 것이 아니고, 음식문화로서 ‘김치를 담그는 문화’가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 발간되는 건강 연구지 헬스 매거진(Health Magazine)은 2008년 3월 24일 게재한 기사에서 한국의 김치를 스페인 올리브유, 그리스의 요거트, 일본의 낫토, 인도의 렌틸콩과 함께 세계 5대 장수식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영국의 더 선(The Sun)지가 지난 13일자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표적인 ‘K푸드’라 할 수 있는 김치가 한국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를 낮추는 데 일조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프랑스 몽뻘리에(Montpellier)대학 폐의학과 명예교수이자 전 WHO 자문역이었던 쟝 부스께(Jean Bousquet)박사가 이끈 연구진이 코로나19 사망자 수와 국가별 식생활 차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여 밝혀낸 결과라는 것이다. 연구결과 사망자 수가 적은 한국과 독일에선 배추를 발효시켜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김치를 즐겨먹고, 독일에선 양배추를 싱겁게 절여 발효시킨 ‘사우어크라우트’를 먹는다. 발효한 배추에는 사람 세포막에 있는 효소인 ACE2(앤지오텐신전환 효소2)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 ACE2와 결합해 세포 속으로 침투하는데, 김치와 사우어크라우트가 일종의 ‘ACE2 천연 억제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치가 ‘K 푸드’의 상징으로 세계적 주목을 끌게 된 만큼, 앞으로 ‘K 푸드’들이 얼마만큼 전 세계인의 관심과 구매로 이어질지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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