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0)경남, 에베레스트 남서벽 숙원 풀다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0)경남, 에베레스트 남서벽 숙원 풀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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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6번 등반 모두 실패…7번째 도전 나서
지방 최초, 에베레스트·로체 동시 등정 노려
 
원정대 귀국 환영회
“한국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6번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남서벽은 한국 산악인들에게 한이 맺힌 곳이다. 이곳을 올라야만 진정한 산악 선진국으로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잣대와도 같았다. 경남은 7번째 도전에서 한국 최초로 등정에 성공했다. 대원들의 팀워크와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조형규 원정대장.

영국·러시아·체코·일본만 오른 난코스

경남산악연맹은 1995년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를 결성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로 알려진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세계 4위봉 로체를 동시에 등정한다는 대 프로젝트였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은 1969년 일본이 처음으로 도전한 후 세계 각국에서 등정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1975년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영국 원정대가 최초로 등정했다. 러시아(2등), 체코(3등), 일본(4등) 4개 국가만 오른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한국은 1985년 첫 도전 이후 모두 6차례 도전했지만 8500m를 최고점으로 등정에는 실패했다. 말 그대로 한국 산악인들의 한이 맺힌 곳이었다.

경남산악연맹은 한국 산악계의 숙원을 해결하고,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남서벽을 올라 대한민국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다.

 
원정대 팸플릿
1995한국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 원정대장은 조형규(함안 중앙약국 대표)가 맡았다. 이병갑 부대장 비롯해 박희택 등반대장·김재수(장비)·윤치원(장비)·김영태(식량)·신홍국(식량)·조성수(촬영)·송재득(의료)·이영국(기록)·박정헌(수송)·김동완(수송)·김창수(보도)·정영상(보도) 대원 등이 선발됐다. 당시 원정대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훈련

1993년 6월 9일 처음 계획한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은 등로주의를 제창한 경남산악연맹이 지난 2년간 치밀한 준비와 훈련을 실시했다. 1995년 8월 6일 김재수·박정헌 대원이 선발대로 출국했다. 본대는 8월 15일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으며 8월 27일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 선발대로 먼저 도착한 김재수·박정헌 대원들은 셰르파들을 독려하며 아이스폴 지대를 통과하기 위한 루트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지만 아직 몬순 시기여서 거의 매일 눈이 내렸다. 대원들은 그동안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인 아이스폴을 건너기 위한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또 식량과 장비를 분류하고 대원들의 컨디션을 조절했다. 9월 5일 아무런 사고 없이 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낸 후 본격적인 등반에 대비했다. 한국 산악인들이 풀어야 할 숙원으로 남아 있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대한 역사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새벽을 깨우는 첫걸음…도전의 시작

9월 6일 새벽 4시. 전 대원들은 1캠프를 만들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안전벨트에 달려 있는 카라비너 등 장비가 발을 옮길 때마다 ‘튕튕’하는 금속 소리를 냈다. 아이젠과 눈이 부닥치면서 ‘뽀드득, 뽀드득’하는 특유의 소리가 대원들의 귓전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며칠간 내린 눈으로 전진이 힘들었다. 임시로 텐트 2동을 설치하고 하산했다. 미리 도착해 고소적응을 마친 김재수·박정헌 대원은 셰르파들과 남았다. 다음날 그들은 6200m에 1캠프를 건설했다. 아이스폴을 통과하기 위해 알루미늄 사다리 50개와 스노우 바 등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고, 연결해 1캠프에 텐트 3동이 들어섰다. 9월 9일 추석날이 찾아왔다. 대원들은 조촐한 음식을 정성껏 차려 조상들에게 절을 올렸다. 모처럼 갖는 휴식에 맞춰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윷놀이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조형규 대장은 2캠프(6500m)를 전진캠프로 활용키로 하고 물량 수송에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 베이스캠프에서 2캠프 구간은 엄청나게 많은 크레바스를 통과해야 한다. 또 넓고 깊은 크레바스는 사다리를 이용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엇보다 잘 보이지 않는 히든 크레바스는 언제나 대원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9월 13일 박희택 등반대장과 김재수·송재득·김동완·윤치원·박정헌 대원은 3캠프 건설에 나섰다. 그들은 1000m에 달하는 로프와 스노우 바 등 각종 장비를 수송했다. 남서벽 등반을 시작하는 베르그슈른트(Bergshrund 빙하와 바위 사이의 거대한 틈)에 고정 로프를 설치하며 등반을 계속했다. 약 35도 경사가 있는 빙벽을 올라 낙석으로부터 안전한 군함바위(6900m) 아래에 도착했다. 그들은 3시간에 걸쳐 얼음을 깎아내고 텐트 2동을 설치했다.

 
사다리를 이용해 아이스폴을 건너고 있는 대원


기상악화…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지 20일 만에 3캠프를 설치했다. 3캠프에서 바라본 4캠프는 약 45~50도에 달하는 경사의 빙벽과 설벽 혼합지역으로 루트 작업이 쉽지 않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9월 중순부터 남서벽에 강한 제트기류가 몰아쳐 4캠프 설치작업은 자주 중단됐다.

9월 19일 새벽 굉음과 함께 베이스캠프에 있던 텐트가 심하게 흔들렸다. 잠시 후 눈가루가 텐트 안으로 몰아쳤다. 대원들은 직감적으로 눈사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셰르파들이 잠자고 있던 텐트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대원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인근 눕체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후폭풍이 덮친 것이다. 식당과 창고 텐트가 부서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기상악화로 베이스캠프로 후퇴한 대원들은 9월 20일 등반을 재개했다. 3캠프는 폭설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3시간에 걸쳐 텐트를 복구한 원정대는 4캠프 건설에 나섰다. 7000m를 넘어서자 로프를 설치하는 작업은 점점 힘들어졌다. 4캠프를 7600m에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늦어져 텐트 2동을 7450m에 보관하고 2캠프로 하산했다.

이틀간 휴식을 취한 후 9월 23일 다시 등반에 나서 텐트 1동을 설치하고 저녁 7시 30분 2캠프로 돌아왔다. 9월 24일 박희택 등반대장과 김영태 대원 등 6명의 대원은 2캠프를 출발, 3캠프를 거쳐 4캠프에 도착했다.

조형규 대장은 5캠프 설치 작업과 휴식을 위해 3캠프로 대원들을 하산시켰다. 조형규 대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8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5캠프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 일단 대원들을 하산시키고 3개조로 나눠 교대로 운행하면서 체력을 비축했다.”

 
록밴드를 오르고 있는 대원


등반 의지 꺾는 제트기류·낙석

10월 들어 남서벽 특유의 제트기류가 에베레스트를 휘감고 지나갔다. 대원들의 등반 의지를 꺾을 정도로 강력했다. 원정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0월 5일 1조 김재수·김영태·박정헌 대원이 4캠프를 출발해 로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록밴드에서 떨어지는 얼음조각은 그들의 전진 속도를 떨어뜨렸다. 폭 3~4m에 55도 설벽의 걸리(물·낙석이 흐르는 통로)까지 로프를 깔았다. 하지만 록밴드에서 떨어진 얼음과 돌들이 걸리를 통해 쉴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김재수 대원은 얼음에 맞고 고통을 호소했다.

김영태 대원은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상했다. “록밴드를 어렵게 돌파하자 2년 전 일본 원정대가 설치한 로프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하게 올라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걸리 안에서 비박한 후 아침 일찍 정상 공격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8000m 이상에서 비박을 한 후 정상 공격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지친 몸을 이끌고 4캠프로 철수했다.”

10월 9일 김영태·김재수·박정헌은 2캠프로 내려가고, 박희택 등반대장과 송재득·윤치원 대원이 정상 등정을 위해 4캠프를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박희택 등반대장은 부러진 갈비뼈 통증으로 하산했다.

 
걸리를 통과하는 대원들

 

1차 공격조 김영태·박정헌, 로체…김재수·윤치원 선발

조형규 대장은 전 대원을 BC로 집결시켰다. 그는 전열을 가다듬고 등정조를 발표했다. “1차 공격조는 김영태·박정헌과 키파·다와다망 셰르파다. 로체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스스로 양보한 김재수·윤치원 대원이 맡을 것이다.”

10월 12일 모든 준비를 마친 대원들은 마지막 등반에 나섰다. 김영태 대원은 당시를 회상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2캠프를 출발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다. 4캠프에 도착해 눈녹인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서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출산 예정일이 며칠 남지 않은 아내가 떠오를 때면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10월 13일 새벽 4시. 김영태·박정헌은 4캠프를 나섰다. 오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남봉(8750m) 꿀르와르 초입까지 엘로우 밴드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연결되는 록밴드는 암벽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일본팀이 설치한 캠프 잔해 옆에 눈을 깎아내고 텐트 1동을 설치했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캠프(8300m)가 만들어졌다. 오후 들면서 짙은 가스가 록밴드를 가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등반

10월 14일 새벽 5시 5캠프 텐트문이 열렸다. 김영태·박정헌 대원은 한국 산악계 숙원을 어깨에 메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록밴드 구간에서 안전하게 정상에 갔다가 내려올 수 있는 고정 로프가 부족해 더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당초 록밴드 횡단 구간을 500m 정도로 생각했지만 700m를 설치하고도 로프가 부족했다. 남은 건 50m 자일이 전부였다. 자일을 반으로 잘라 김영태·박정헌, 키파·다와다망이 각자 몸을 묶고 설원을 지나 남봉 쿨르와르 록밴드 밑까지 올라섰다. 김영태·박정헌은 교대로 확보하며 60도 경사의 설빙벽인 남봉 쿨르와르를 넘어섰다. 오후 1시 남봉에 섰다. 이제 정상까지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위험천만했다. 정상은 눈이 많아 등반이 쉽지 않았다. 칼날 능선을 따라 한발 한발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2시간을 움직였다.

정상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김영태(오른쪽) 대원과 박정헌 대원
세계 다섯 번째…한국 남서벽 숙원 풀다

가스에 가려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 3시 구름이 걷히면서 이들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치한 삼각대를 눈으로 확인했다.

김영태·박정헌 10월 14일 오후 3시. 김영태·박정헌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따라 정상에 섰다. 정상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마무리한 이들은 오후 4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베레스트에는 벌써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지만 헤드랜턴 없이 어렵게 올랐던 록밴드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며 오후 9시 5캠프에 도착했다.

10월 15일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설맹과 졸음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황에서 고통스런 하산을 시작했으며 3캠프에서 설맹 치료제를 복용한 후 안정을 되찾았다. 3캠프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안전지대인 2캠프로 무사히 내려온 이들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세계에서 다섯 번째, 한국에서 가장 먼저 등정했다는 큰 선물을 갖고 왔다.

한편 로체 등정조 김재수·윤치원은 10월 14일 7800m에 4캠프를 설치했지만 16일부터 강력한 바람이 몰아쳤다. 다음날 박희택 등반대장과 김재수·송재득 대원이 강풍에 맞서 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바람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조형규 원정대장은 철수 명령을 내리고 훗날을 기약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등반대원

[취지문]

목표가 있는 인생이 좋다.
인생의 한 부분만은 초월하여 살고 싶었고
집념과 축적된 에너지는 우릴 편안한 삶에 안주할 수 없게 하였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모험한다는 것은 위험과 좌절이 따르리라,
그러나 이 모험과 도전의식만이 인간을 새롭게 태어나도록하고
끝없는 생의 질곡을 헤쳐 나가게 할 것다.

우리는 산을 통하여 인생의 습작을 연마할 것이며,
산은 우리에게 겸손과 절제가 어떤 것인가를 암시해 주고
화락(和樂)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으며,
남기는 자의 여유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확인시켜 줄 것이다.

생의 빈 칸을 산과의 교신(交信)을 통해 조금씩 교정하고
채워나가는 한 과정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경남산악연맹의 1988/89 동계 눕체봉 세계 초등정과
1992년 낭가파르바트 한국 초등, 1992년 브로드피크 등반,
1994년 안나푸르나1봉 남벽 한국 초등을 이룩하기 위해
흘린 땀과 정열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며, 등산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원정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반 루트 중 가장 난이도 높은 남서벽 루트와
세계 4위봉인 로체봉 서벽 직등 루트를 향한 대원정의 서막을 열려 합니다.

이 원정을 위해 지금까지 훈련중인 대원들의 집념과 정열이
한국 산악계의 숙원을 해결하고 거벽 등반, 등로주의를 지향하는
선진적인 등반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랍니다.
그간 도움을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95. 7.21
‘95 한국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 대장 조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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