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 어슬렁 걷다 찾은 진주 속 진주
어슬렁 어슬렁 걷다 찾은 진주 속 진주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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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생태공원을 가다
 
진주 금산생태공원 모습.
올 한해도 ‘훅’하고 지나가고 있다. 한해의 절반을 돌아보고 남은 한 해도 잘 마무리하자고 다짐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간 소홀했던 나를 보살피는 기회를 갖고자 진주 금산 생태공원을 찾았다.

금산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옛 금산 잠수교의 흔적이 나온다. 남강 둔치를 따라가면 금산생태공원이다. 강 건너 하대동 쪽 둔치에 시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싱그럽게 보인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건너와 달리 이곳은 까칠하다.

진주 금산생태공원은 2014년 6월 이 일대 19만㎡ 부지에 산책로를 비롯한 다목적 광장, 배드민턴장, 잔디광장, 게이트볼 체력단련장, 데크 육교 시설 등을 갖추고 완공했다. 그런데도 아직 시민들에게 덜 알려진 까닭에 찾는 이도 드물다.

건너가 세련미가 넘치는 도시 이미지라면 여기는 풀냄새 가득한 농촌 이미지다. 황무지처럼 황량한 느낌도 덜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다.

간간히 게이트볼장에서 들려오는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아니라면 고요하고 한적한 적막을 깨는 소리는 없다. 덕분에 누구의 눈치도 의식하지 않고 탐험하듯 슬렁슬렁 거닐기 좋다. 강 쪽에는 왜가리 등이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이 보이고 덩달아 신선이라도 된 양 걸음걸음이 여유롭다.

어슬렁어슬렁. 시간 사치를 누리는 시간 부자가 되어 샛강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도 건넌다.

오가는 사람의 인기척에도 비둘기 무리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땅속 벌레 잡아 먹기 바쁘다. 내 걸음에 놀랐는지 아님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인지 한참이 지나서야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난다.

비둘기가 날아가는 쪽으로 샛강을 건너자 산책로가 나온다. 산책로지만 풀들이 무성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 오히려 무대의 당당한 주연 같다.

샛강을 사이에 두고 곳곳에 징검다리가 있다. 높다란 아파트들이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이곳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도회지의 번잡함은 강 너머 저편에 묶여 있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며 제거 대상으로 여기는 개망초들이 한 무리를 이뤄 마치 하얀 빙수처럼 시원하게 피었다. 이곳에서는 개망초가 주인공이다. 뭇사람들의 관심과 관리를 받은 화단의 화초가 아니라 까칠한 자연 그대로의 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어른 허리 높이까지 맘껏 자란 풀들이 바람결에 장단 맞추듯 흔들거리는 풍경이 정겹다. 풀은 제초의 대상이 아니라 ‘샤르륵샤르륵’ 바람에 박자 맞추며 노래 부를 뿐인다.

이곳은 이른바 잘난 값진 꽃이며 나무가 없다. 그저 맘껏 자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다. 누구의 손길을 받지 않고 이글거리는 태양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품어 올린 당당한 주인공들이다.

강을 벗 삼아 걸으며 물에 비친 아파트 풍경이 그림처럼 두 눈에 꾹꾹 담긴다. 문득 머리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왜가리 한 마리 하늘을 물인 양 헤엄치듯 날아간다. 덩달아 내 근심도, 번잡한 일상의 묵은 찌꺼기도 날아간다.

공원을 거닐며 마음에 쌓인 근심을 털어낸다. 속삭이듯 말을 거는 풀들의 이야기에 두 귀와 눈이 열린다. 덩달아 마음도 개운하다. 그간 소홀했던 나를 보살피는 시간이다.

공원을 타박타박 걷다 보면 강 너머의 익숙한 풍경과 다른 색다른 풍경을 만난다. 단정하고 깔끔한 가면을 쓴 도회지가 아니라 자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자연이 빚은 또 다른 그림이다. 원하는 삶의 속도로 느리게 걸어도 뭐라 딴지 거는 사람이 없다. 걸음의 발맞춰 풍경이 저만치 남겨진다.

생태공원을 거닐고 오자 땀이 흥건하다. 지나는 바람들이 연신 땀을 훔친다. 보약 한 첩을 지어 먹은 듯 힘이 솟는다. 나만의 비밀정원 같다.

/김종신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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