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9]성철스님 순례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9]성철스님 순례길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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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스님께서 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 받았을 때, 추대식에 참석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기셨다. 이 한 마디로 스님은 전국민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함께 사람들 곁에 큰 가르침과 깨달음으로 다가온 말씀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경남 산청에 조성된 성철스님 순례길과 겁외사 순례를 떠났다.

진주에서 승용차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세속의 시공을 벗어나 진리와 함께 하는 절’이란 뜻을 가진 겁외사, 성철스님을 기리기 위해 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절로 진리를 깨달아 영원한 자유인이 되고자 했던 스님의 생애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벽해루에 들어서자 근엄한 모습의 성철스님 동상이 눈앞에 서 계셨다. 대웅전 옆 스님의 기개가 느껴지는 백송을 지나 솟을대문인 혜근문을 들어서면 바로 스님께서 탄생하신 생가다. 생가는 전시관인 포영당과 사랑채인 율은재, 그리고 안채인 율은고거 3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포영당에 들어서자 스님께서 평소에 입으셨던 누더기 두루마기가 맨 먼저 눈에 띄었다. 40여 년 동안 입은 누더기 두루마기와 깁고 기워서 다시 신은 덧버선 등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스님의 모습을 보는 듯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스님께서 늘 화두로 삼으셨던 ‘삼 세 근(麻三斤)’ 글씨, 출가 이전에 책읽기를 즐겨했음을 알 수 있는 독서목록 등 어린 시절부터 열반하실 때까지 쓰신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게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고 전시관 이름도 포영당(泡影堂)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필자에게 두루마기 긴 소매로 후려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안채인 율은고거(栗隱故居)는 스님의 모친께서 생활했던 공간을 재현해 놓은 곳이고, 사랑채인 율은재는 부친께서 거처했던 곳을 재현해 놓았다. 생가 마당에는 일원상과 함께 스님께서 출가 전 쓰시던 서책, 옷, 신발 등을 조형물로 조성해 놓았다.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큰 깨달음을 얻겠다는 일념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산이 어우러진 ‘성철스님 순례길’

어느 날, 한 노스님이 건네준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읽고 심안(心眼)이 밝아짐을 느껴 그 길로 지리산 대원사로 가서 불철주야 참선 정진하였고 정진 40일만에 깨달음을 얻은 성철스님은 1936년 봄 해인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수행하기 위해 떠난 길의 들머리인 ‘겁외사-묵곡 대나무숲길-양수장-경호강변과 엄혜산 기슭 데크길-법륜암-원지 대나무숲길-양천강 둔치주차장’까지의 3km 구간을 성철스님 순례길이라 이름 지어 생태길을 조성해 놓았다.

겁외사를 나와 포장된 도로를 500m 정도 단성 방면으로 올라오자 새로 조성해 놓은 생태숲공원인 성철공원이 있었다. 습지생태원, 은행나무숲, 잔디광장, 어린이놀이공간, 무궁화동산 등 테마별로 다양하게 꾸며 놓았다. 휴일인데도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찾는 이들이 적은 것이 다소 아쉬웠다. 성철공원에서 나와 성철스님 순례길을 걸으려니 안내판이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 도로 바닥에 생태길이란 표시와 엄혜산 등산로 안내도만 있고 방향을 표시해 놓은 안내판이 없다 보니 처음 찾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렸다.

성철스님 순례길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방향표지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야자매트가 깔린 묵곡대나무숲길은 이제 막 조성된 듯 대나무들이 한창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야 무성한 숲을 이룰 것 같았다. 양수장을 지나자 법륜암까지 약 1km 거리를 나무데크로 강변길을 만들어 놓았다. 엄혜산 기슭 중간중간에 쉼터를 마련해 놓았는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강 가운데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림과 유유자적한 삶이 주는 행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잔물결을 일으키며 소리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필자가 걸어온 삶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떠올려 보았다. 두물머리에 닿자 넓은 강폭의 경호강이 작은 줄기의 양천강물을 껴안고 흐르는 풍경이 무척 다정스럽게 보였다. 법륜암에서 다시 대나무숲길을 지나자 양천강 잠수교가 나타났다. 웅장한 현대식 다리보다 훨씬 정겨워 보였다. 잠수교를 지나면서 발밑에 흐르는 강물에 말을 걸어도 보고 혹시 노니는 물고기들이 있는지를 찾아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잠수교를 건너면 바로 성철스님 순례길의 종점인 경호강 둔치주차장이다. 강물처럼 느린 걸음으로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법륜암에 닿자, 경호강변으로 난 성철스님 순례길과 엄혜산 등산로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갈 때는 순례길 대신 산행을 통한 수행을 선택했다. 초입부터 밧줄을 잡고 오를 정도로 매우 가팔랐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성철스님의 삶을 떠올리며 걸었던 순례길과는 달리 엄혜산 산행은 온 힘을 다해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10여분을 오르자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 무렵, 긴 의자가 놓인 바위전망대가 나타났다. 내려다본 조망이 정말 비경이었다. 경호강와 양천강, 아파트가 점령해 버린 원지와 단성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과 강이 어우러져 탄생시킨 성철큰스님

엄혜산과 경호강이 만나서 빚어낸 이 비경, 성철스님께서도 마을 뒷산인 엄혜산을 오르며 강물이 흐르는 이치와 건너편 웅석봉에 걸린 구름이 일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경험과 도를 깨친 선승으로서의 철학이 어우러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득도에 이른 스님께서 일체망상을 떨쳐버리고 바라본 ‘산과 강’에서 얻은 법어가 곧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일 것이다.

높은 산은 낮게 흐르는 강물에 제 그림자를 담가놓고 늘 자신을 헹군다. 그래서 산은 푸르다. 물은 산을 씻어주면서도 스스로를 산속에 가둬놓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강물은 겸손하다. 산은 우뚝 솟아있음에도 늘 푸르고, 물은 쉼없이 흘러가면서도 깨끗함을 유지하는 비결을 성철스님 순례길이 필자에게 들려주는 것 같았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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