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주인이 되자
내 시간의 주인이 되자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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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대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

 

칠월 장맛비가 창문을 밤새 세차게 때린다. 흩날리는 빗줄기처럼 요 며칠 동안 티브이를 통해 흘러나오는 생각지도 못한 죽음의 소식들로 너무 우울하다. 생각의 졸가리가 어지러워 현기증이 날 정도다.

나는 올해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지난 5월 한 달 동안 제주 한 달 살이를 보내고 왔다. 제주 속 제주라고 할 만큼 예스러움이 남아 있는 제주 서쪽 한경면 판포라는 작은 포구마을에서 보냈다. 그런데 그 집에는 흔히 집에 있는 두 가지가 없다. 하나는 티브이이고, 다른 하나는 침대다. 주인은 일부러 갖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름 의미를 두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티브이에 중독되었거나 티브이 바보가 된 지가 오래다. 거기에 SNS까지 한 몫을 하니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이들의 매체에 따라 조종되어가는 꼭두각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뉴스는 뉴스대로 유사한 내용들을 종일 반복하여 쏟아내고 보수와 진보의 이념에 따라 갈라진 패널들의 흥분된 주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덩달아 국민들도 진영이 갈라져 서로 삿대질을 하는 꼴이 식상하기까지 하다. 한쪽은 이른바 먹방으로 방송마다 난리고 또 어떤 방송이 무슨 노래 프로로 인기를 얻자 방송마다 유사한 프로가 만들어지고 또 그로 얻은 인기로 같은 출연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도 안쓰럽기까지 하다.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가 된 지 오래고 수많은 홈쇼핑 방송은 시청자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구매 충동력을 불러오게 한다. 방황하고 갈 곳이 없는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한다.

티브이를 바보상자라고 한 것은 티브이를 통해서 시청자가 바보가 된다는 의미다. 티브이가 조정하는 대로 자기도 모르게 주관과 주체가 사라진 바보가 된다는 말이다. 교묘하게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상상을 넘어선 조작으로 영상을 그대로 믿게 만드는 마약과 같은 힘을 티브이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동일한 정보에 접하다 보면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그 정보에 세뇌되어 버린다. 판단력은 흐려지고 눈은 좁아진다. 티브이가 하는 대로 생각은 끌려가고 몸은 땅에 붙어 있으니 영육은 혼란되고 쇠퇴해 간다.

그런데 티브이 없이 한 달 살아보니 온통 나의 시간이고 내가 시공의 참 주인이 된 듯했다. 잠시나마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고 삶을 깊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때로는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서 좋고, 아름다운 자연을 깊게 바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숙소에서 보이는 창 너머 멀구슬 나뭇잎이 하루하루 짙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아침이면 새소리를 듣고 밤이면, 밤하늘 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염없이 길가를 거닐며 이름 없는 꽃들과 눈을 맞추고, 햇살이 떨어진 눈부신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구름과 바다를 물들이는 저녁 붉은 노을은 환상적이다. 바닷가 검은 용암들의 기기묘한 형상들이 보이고 걸어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파도소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처럼 다정스럽고 때로는 물거품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오름과 곶자왈의 원시 숲속을 걸으면서 원시 자연인이 되어 순수해지는 듯해서 좋았고, 바닷가 예쁜 찻집에서 커피 한잔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티브이를 보지 않으니 세상의 다툼과 세상의 온갖 험한 꼴을 보지 않아서 좋고 그에 따라 흥분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돌아와 티브이를 켜니 또 세상은 아귀다툼이다.

제주에서 티브이 없이 산 한 달 동안 나름 많은 것을 가지고 왔다. 참나를 잠시라도 성찰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고, 자연을 볼 수 있는 작은 눈을 가져 왔다. 우리 모두 잠시라도 티브이 없이 한번 쯤 살아보면 어떨까 한다.
임규홍 (경상대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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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배 2020-07-28 07:58:27
좋은 글입니다.
이십 년 전 쯤이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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