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여행밥상]노란 콩고물 쑥인절미 자꾸 손이가는 경수떡집
[박재현의 여행밥상]노란 콩고물 쑥인절미 자꾸 손이가는 경수떡집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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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디서 들었던 말 같다. 재를 넘는 할머니에게 호랑이가 물었던 말이다.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호랑이도 떡을 좋아한다는 말일 것 같다.

나는 그다지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목이 막혀서다. 특히 인절미가 그렇다. 그러나 이따금 맛난 떡은 좋아한다. 한 자리에서 많이 못 먹어도 맛난 떡은 손이 간다. 언젠가 친구가 추석이라고 선물을 하나 보내왔다. 쑥인절미였다. 콩가루가 잘 발려진 쑥떡은 잘게 잘려져 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했다. 무엇보다 자꾸 손이 갔다. 크지 않게 잘려있어 먹기 딱 좋았다. 콩고물도 넉넉하다. 끈적거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떡을 선호하지 않는 나도 손이 자주 가는 거다.

어머니는 떡을 좋아하신다. 지금은 치매 초기지만 떡만 보내드리면 한 자리에서 거의 다 드신다. 떡 한 되면 가로, 세로, 높이 25㎝ 종이 상자에 가득 들어간다. 그걸 다 먹으려면 나 같으면 한 달은 걸릴 텐데, 어머니는 며칠이면 다 드신다. 그만큼 떡을 좋아하신다. 하여, 틈만 나면 떡을 보내드린다. 그런데 이 떡이란 게 택배로 보내면 식고 굳는다. 그래서 경수떡집은 여름엔 택배를 보내지 않는다. 전화로 떡 주문을 넣어도 그날의 날씨나 온도를 체크해서 보낼만 때만 보내준다. 배달이 되는 기간으로 치면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다. 여름에는 택배를 보내주지 않는다. 산청 시골에 있지만 경수떡집을 직접 가서 사야 한다는 거다.

 
여름에는 택배 배달을 안해준다. 무더운 날씨에 떡이 금방 쉬기 때문이다. 떡을 찾아 산청으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

 

마침, 떡이 필요한 일이 생겨 경수떡집에 들렸다. 떡집이라고 하는데 직접 보니 방앗간이다. 떡만 만드는 곳이 아니라 고추도 빻고 들깨도 빻고 쌀도 찧는다. 그러니 널찍한 방앗간은 덜컥덜컥 고추 빻는 소리로 요란하다. 재채기가 나온다. 멀찌감치 떨어져 주문한 쑥인절미를 보니 맛나 보였다. 하나를 슬쩍 집어 먹으려니 따로 준비해 뒀단다. 맛뵈기로 조금 더 했다고. 그 말이 얼마나 정겹던지. 보통은 주문한 양만큼만 포장해서 전달하면 끝인데 말이다. 내가 쑥 인절미를 부탁했으면서도 한여름인데 쑥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넌지시 쑥을 그렇게 많이 저장해 놓았냐고 물으니 봄에 산내들로 다니며 쑥을 캐놓는다는 거다. 그러려면 얼마나 바쁠까 싶은데, 동네 할매들이 지리산 자락 청정한 곳에서 캔 쑥을 사들였다는 거다.

떡방앗간 하면 유난히 정겨운 마음이 있는데, 그건 설날 다라이를 들고 방앗간 문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그 줄에 서 있었다. 먹을 게 별로 없던 어린 시절, 가래떡은 정말 맛난 먹거리였고, 떡을 한다는 건 잔치와 연관되어 있었다. 덜컥덜컥 요란한 소리로 쌀을 가는 방앗간의 정경은 나에게 그 긴 줄로 남아있다.


경수떡집 주인은 정말 수더분한 동네 아주머니다. 길에서 만나면 그저 인사하고 싶은 그런 정 많은 얼굴이다. 웃는 모습은 또 어떤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 어머니 같은 소박한 얼굴이다.

방앗간에서 청정 쑥으로 직접 만든 쑥인절미. 어머니가 좋아해서 그런지 나도 그게 맛나다. 떡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내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손이 자꾸 그리로 간다. 고물이 도톰하니 묻어 있는 폭신한 쑥인절미는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을 때부터 침이 고인다. “고솝다”는 말이 폭신하게 떠오른다.



*경수떡집 : 산청군청 옆 골목에 있다. 055-973-6518, 010-8894-6518, 010-3838-7394

     
산청군 산청읍 중앙로에 위치한 경수떡방앗간. 경수떡집은 좌판을 놓고 떡을 파는 떡집이 아닌 방앗간이다.
경수떡집에 들어서면 곡식이며 고춧가루를 빻는 분쇄기들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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