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0)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3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0)교육계의 별 허만길 박사의 걸어온 길(5)
지난 회에 이어 허만길의 ‘외솔 최현배 박사와의 만남 회고’를 더듬어 가볼까 한다. 허만길은 최 박사께서 “서울에 와서 대힉 공부를 할 수 없겠느냐고, 공부를 한다면 힘껏 도와 주겠다”고 제의했을 때 가정 형편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을 세세히 말씀 드렸다. 그렇지만 최 박사께서 “한글 연구에 어울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를 찾기 어려운데 자네가 그 연구의 뒤를 이어 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신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메어지는 것이었다. 최현배 선생께서는 이어 “내 집에 묵으면서 원고 정리를 한 댓가로 학비에 사용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시고 원하기만 하면 미국 유학까지도 보내 주겠다”하고 원하셨다.

이어 큰 방으로 자리를 옮겨 최박사께서 사모님께 “나는 열일곱에 국어공부를 시작했는데 허군은 그 나이에 중학교 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했으니 참으로 기특한 재주지요? 가정 형편만 된다면 서울에 와서 공부하면 좋을 텐데”라고 하셨다.

다시 박사님의 방으로 돌아와서 박사님의 대표적인 저서 ‘우리말본’ 내용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셨다. 다른 학자들이 쟁점으로 삼고 있는 ‘잡음씨’, ‘겹씨’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한글학회 기관지 ‘한글’ 여러 권과 박사님께서 지으신 ‘고친 한글갈’,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글자의 혁명’,‘환갑 기념 논문집’등을 서명하시어 허만길에게 주었다. 물론 이들 책은 이미 허만길이 공부한 책들이지만 저자의 서명이 된 선물이기에 고맙기 그지 없었다

저녁 식사가 일찍 들어왔다. 쇠고기 불고기가 상에 올려져 있었다. 어렵게 살아온 부모님과 가족들이 생각났다. 부모님보다 허만길이 더 좋은 밥과 반찬을 어찌 삼킬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기 반찬에는 젓가락을 대지 않고 밥과 나물과 간장으로만 식사를 조금 했다. 최박사께서는 고기도 먹지 않고 식사를 그렇게 해서 되느냐고 하시며 걱정스러워 하셨다.

저녁식사 뒤에는 박사님의 서재 구경을 했다. 서재는 박사님의 방 바로 옆에 있었다 많은 책들이 책시렁에 정돈되어 있었다. 서고가 따로 있다고 하셨는데 또 그 서고에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을 것인가 하고 상상해 보았다. 넓은 정원에는 꽃나무들이 빗방울 속에서 파란 싹들을 자랑하면서 방긋방긋 허만길에게 봄을 노래해 주는 듯했다.

허만길은 최 박사님의 방에서 잤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몸이 개운했다. “허군, 바람이나 쐬러 나오오” 박사님께서 허만길이 마루에 나와 있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말씀하셨다. 박사님은 일찍 일어나시어 뜰에서 어린 나무를 정리하고 계셨다. 4월 5일 식목일에 심고 싶은 어린 나무들인 것 같았다. 허만길은 어린 버드나무 한 아름 안고 박사님과 함께 한적한 큰 길로 나갔다. 대흥극장과 철길이 있는 곳이었다. 길가에 버드나무들을 심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일요일인지라 그냥 놀러 나온 아이들이었다. 박사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이제 심은 버드나무들을 몇 그루씩 배당해 주셨다.

“이 나무는 너의 것이야 네가 주인이다”라고 하셨다.그리고는 각자에게 맡겨진 나무들을 잘 자라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박사님은 작은 소리로 허만길에게 말씀하셨다. “허군! 오늘 아침은 몸이 이상하군.” 허만길은 박사님의 평소 모습을 알지 못했는지라 박사님의 건강 상태를 얼른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50미터쯤 떨어진 가게에까지 나무상자를 들고 가자고 하셨다. “이 꽃뿌리들을 팔든지 나누어 주든지 하오”라고 가게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중략)

박사님은 사모님에게 자신은 집에서 안정하는 것이 좋겠으니 사모님 혼자 허군을 안내하여 서울 구경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아침 식사의 반찬이 좋았다, 허만길은 역시 어제 저녁처럼 고기 반찬은 들지 않고 나물과 밥만 먹었다. 그것도 많이 먹지 않았다.

“첫째 몸을 강하게 하여야 하오. 동양 사람은 체면을 차리지만 서양 사람은 남의 대접을 달갑게 받는 것이 예의라오”라고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박사님께서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셨다. 첫 번째로 동그라미 셋을 삼각으로 그리셨다. 왼 쪽 두 동그라미 안에는 ‘이성’, 이성이라 쓰시고 오른 쪽 아래 동그라미 안에는 ‘욕심’이라 쓰셨다. 두 번째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시고 그 안에 ‘욕심’, 욕심이라 쓰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