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 속에 다시 만난 ‘트로트’
세상의 변화 속에 다시 만난 ‘트로트’
  • 경남일보
  • 승인 2020.07.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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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륜 (변호사)
 

 

우연히 은행 앞을 지나가다 내가 은행 지점을 방문한 적이 꽤 오래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계좌이체, 세금 납부뿐 아니라 대출도 척척 해결되는 세상이니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예전에 번호표를 뽑고 30분 이상 할 일 없이 기다렸던 기억이 새삼 정겹게 느껴진다. 필자가 대학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는 법령과 판례를 누가 더 잘 암기하느냐가 중요한 법조인의 자질이었다. 법령이나 판례를 줄줄 말하는 친구에게는 ‘제록스’(복사기 이름)라는 명예스러운(?)별명을 붙여주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암기력 보다는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으로 얼마나 잘 찾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가 변호사의 중요한 능력이 됐다.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인 超(초)연결과 超지능으로 무장한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장면은 인공지능이 사람의 두뇌를 대신할 세상이 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운전해 줄 것이므로, 운전면허증은 쓸모없고, 재판도 인공지능이 알아서 척척 할 것이니, 변호사가 사라질 거라는 무서운 뉴스도 들려온다.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나름 미래 산업 관련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테드(Ted)사이트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지친 마음에 잠시 TV를 켠다. TV속에는 트로트가 열풍이다. ‘미스트롯’에서 ‘미스터트롯’으로, ‘트롯신동’에서 ‘트롯신’까지…. 남녀노소 모두 트로트에 푹 빠져 있다. 최근에는 유명 래퍼가 트로트 가수로 변신해서 열창한다. 한때 ‘트로트’는 한물간, 구식 노래가 아니었나? 외할아버지 칠순 잔치에서 어머니와 이모들이 트로트를 열창하면서 흥겹게 놀던 모습이 그립다. 21세기 최첨단 유행이 성행하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트로트가 대세가 될 줄은 제 아무리 알파고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사 돌고 돈다고 하지만, 트로트가 이처럼 다시 유행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 따위를 알 필요도 없다. 단지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익숙했던 옛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돌아와 곁에 있는 것이 반갑고 즐겁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가족들끼리 노래방에 가서 어머니의 트로트 한 자락을 들어야겠다.

트로트 덕분에 아이들이 할머니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트로트가 유행하는 동안에는 제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준비 등은 미뤄 두기로 했다. 트로트 열풍이 오래 가기를 바래본다. 참, ‘제록스’로 불렸던 그 친구는 인터넷 시대에서도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최영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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