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2) ‘터키옥(玉)의 여신’ 초오유, 패러글라이딩으로 날다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2) ‘터키옥(玉)의 여신’ 초오유, 패러글라이딩으로 날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8.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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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양산마스터즈알파인클럽 원정대원 4명 올라
변미정씨, 한국 여성 최초 8000m 무산소 등정
 
양산마스터즈 알파인클럽 1996년 초오유 정상 사진.
1996년 양산마스터즈알파인클럽 대원 3명은 티베트 초오유 등반에 나섰다. 모두 8000m급 산에 대한 첫 원정이었다. 그들은 9월 23일 정상에 섰다. 이상배·김영기·변미정 대원은 첫 8000m 도전에서 등정했다. 변미정 대원은 한국 여성 사상 최초 무산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해 하산하려는 계획은 실패하고 6500m에서 패러로 하산했다.

이상배 대장, 8000m 패러 하산 프로젝트

1996년 양산에서 활동하는 이상배 대장은 특별한 등반 계획을 세웠다. 세계 6위봉 초오유(8201m)를 등정한 후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활강한다는 프로젝트였다. 초오유 정상은 8000m 산 가운데 유일하게 정상이 넓은 플라토로 이뤄져 있어 패러글라이딩 활강이 충분히 가능한 곳이다. 1980년대 세계 최초로 8000m급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한 곳도 바로 초오유였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정우환 단장을 중심으로 이상배 대장·박정헌 등반대장·김영기·변미정·박인희·노종백 대원 등 7명으로 원정대를 구성했다. 변미정 대원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가정주부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1996년 8월 원정대는 네팔 쿰부에서 곧바로 카라반을 시작했다. 당초 8월 22일 네팔과 티베트 국경지대인 장무에 도착할 계획이었지만 계속되는 장마로 도로가 유실되면서 일정이 늦어졌다. 도로가 끊기면 짐을 반대편으로 옮겨 싣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8월 24일 어렵게 국경을 넘어 티베트 니알람(해발 3750m)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는 고소가 그들을 침대에 드러눕게 만들었다. 다음날 박정헌은 혼자 베이스캠프(4900m)로 떠났고 나머지 대원들은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물렀다. 대원들은 8월 26일 팅그리(4342m)를 거쳐 다음날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하늘은 잔뜩 흐려 ‘터키옥(玉)의 여신’으로 불리는 초오유를 볼 수 없었다.

 
초오유 원정대 팸플릿


패러글라이딩 훈련 실시…고소의 고통

베이스캠프 도착 첫날 원정대는 패러글라이더로 훈련을 시작했다. 다른 나라 원정대원들이 관심 있게 지켜봤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패러를 갖고 오는 원정대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9월 1일 전진캠프(5800m)에 도착하고 계속된 루트 작업을 통해 9월 5일 1캠프(6500m)를 설치했다. 대원들은 식량과 장비를 잘 정리하고 패러글라이더 하산을 위해 윈드 색(wind sack 바람 표식기)을 꽂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부 대원들은 고소를 호소했다. 그러나 고소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산하거나 시간을 보내면서 적응할 수밖에 없다. 대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후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변미정 대원은 당시를 회상했다. “니알람에 도착한 후부터 고소가 있었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도 고소로 한참을 텐트에 누워 있어야 했다. 1캠프에 갔다 오고 고소로 쓰러져 버렸을 정도다. 등반 초기에 너무 힘들었다. 매일 생각하던 신랑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9월 7일 대원들은 1캠프로 향했다. 충분한 휴식으로 대원들은 고소에 적응했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전진했다. 박정헌 등반대장은 1캠프에서 곧바로 2캠프로 올라 설치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대원들 대부분이 8000m 산을 처음으로 도전했기 때문에 그와 이상배 대장이 루트 작업 등을 도맡았다. 실제로 첫 원정을 온 대원들은 전혀 다른 높이와 만년설, 거의 매일 내리는 눈과 살을 파고드는 추위 등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또 등반에서 꼭 필요한 이중화와 아이젠, 시간이 지날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은 그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1캠프 전경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변미정 대원은 “베이스캠프에서 전진캠프~1캠프로 올라올수록 숨이 목까지 찼다. 가슴이 터질 듯했다. 눈까지 내려 컨디션이 정말 엉망이었다. 무거운 이중화와 배낭은 정말 벗어 던지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라 오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9월 9일 오전 7시 이상배 대장과 박정헌 등반대장은 2캠프(7050m)를 만들기 위해 1캠프를 나섰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전진캠프에서 고정로프를 깔며 전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내리면서 그들을 관찰할 수 없었다. 무전도 먹통이었다. 베이스캠프와 전진캠프에서는 연락 두절로 애간장을 태웠다. 이날 오후 5시 무전이 날아왔다. 이상배·박정헌은 2캠프를 건설 후 고정로프를 설치하다 많은 눈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2캠프로 돌아왔다고. 초오유에는 다시 눈이 내렸다. 며칠 휴식을 취한 대원들은 9월 12일 2캠프로 향했다. 설사면은 신설이 내려 쉽지 않았다. 약 2시간을 오른 대원들은 약 30m의 빙벽이 나타났다. 다른 대원들은 쉽게 통과했지만 첫 원정인 변미정 대원이 계속 처지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그를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변미정 대원은 포기하고 싶었지만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녀는 오름짓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대원에 비해 늦은 시간이었지만 2캠프에 무사히 올라섰다. 9월 13일 새벽 이상배·박정헌은 3캠프(7400m)를 만들기 위해 출발했다. 다른 대원들은 하산을 서둘렀다. 전진캠프로 귀환한 다른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며 정상 공격을 위한 3캠프가 구축되기를 기원했다.

등반루트


9월 21일 베이스캠프 떠나

계속해서 내리는 눈과 심한 바람으로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하던 원정대는 날씨가 좋아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토대로 정상 도전에 나섰다. 이상배 대장과 박정헌 등반대장·김영기·변미정 대원이 정상 공격을 하기로 했다. D-day는 9월 21일이었다.

운명의 날 공격조는 베이스캠프를 떠나 1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2캠프로 나서는 구간은 설사면이 잘 얼어 있어 등반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대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진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변미정 대원이 급하게 용무를 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 순간 이상배 대장이 소리쳤다. “안돼!” 깜짝 놀란 변미정 대원은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상배 대장이 그녀를 붙들었다. 변 대원은 남자 대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곳으로 갔는데 바로 크레바스 입구였다. 한숨을 돌린 대원들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2캠프를 거쳐 3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록밴드 아래에 설치한 3캠프는 4명이 휴식을 취하기에는 너무나 좁고 불편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대원들은 내일 있을 정상 공격에 대비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공간이 부족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1996년 초오유 등반 박정헌

 

비행루트
마지막 캠프를 떠나 정상으로

9월 23일 새벽 1시. 베이스캠프에서 잠을 깨우는 무전을 보냈다. 겨우 눈을 뜬 대원들은 굼벵이처럼 뒤척이며 침낭에서 쉽게 나오지 못했다. 그동안 등반으로 인한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정상을 간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새벽 3시 15분 마침내 그들은 마지막 캠프를 떠났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날씨는 포근해 그렇게 춥지 않았다. 정상으로 가는 날씨는 원정대 편이었다. 옆에 있던 러시아팀도 함께 출발했다. 천천히 설사면을 올랐다. 잠시 후 록밴드가 나타났고 아이젠이 얼음과 암벽을 딛고 올라서려는 소리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주변을 깨우고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록밴드는 만만치 않았다. 동이 틀 무렵 그들은 록밴드를 넘어섰다. 마침 강한 바람이 8000m 지대를 통과했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가 얼굴과 몸을 스쳐 지나갔다. 넘지 못할 것 같았던 지루하고 고통스런 록밴드를 오르자 플라토가 펼쳐졌다. 정상으로 가라는 대나무 표식기가 눈에 들어왔다. 초오유 정상의 드넓은 플라토에 도착했다. 마침내 그들은 정상에 섰다. 전진캠프에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정상! 초오유 정상에 섰다. 오버.” 4명은 정상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아쉽게도 심한 안개로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 여성 최초 무산소 등정

변미정 대원은 한국 원정 사상 여성 산악인 최초로 8000m를 무산소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도 8000m 첫 등반에서 이룬 업적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3캠프에서 얼마쯤 올랐을까 손과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산소가 부족해 마비 현상이 왔다. 의료용 산소는 이상배 대장이 갖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것보다 정상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계속 걸었다. 정말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정상에 올랐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내려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하산하면서 힘이 없어 주저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3캠프 텐트를 엉금엉금 기면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하산할 때도 정상에서 마비된 다리는 계속 그녀를 괴롭혔고 다리를 끌며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9월 26일 박정헌과 김영기 대원은 6440m 지점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이륙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7500m까지 올라가며 20여 분간 비행을 한 후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박정헌은 이번 패러글라이딩 하산으로 히말라야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패러로 하산하는 박정헌 대원
[취지문]

양산 산악인들과 활공인들을 주축으로 하여 지난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고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패러글라이딩 원정팀이 민족의 성산인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늘길이 열리고’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원정 비행에 성공하면서 ‘96한국초오유(8201m) 패러글라이딩 원정대란 또 하나의 큰 의욕적인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히말라야 고산에서 최초의 패러글라이딩 기록은 1985년 프랑스 등산가 장마르크 브와벵이 했다고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여 성공해 보겠다 하는 막연한 행동의 발상이 아니라 그동안 등반지식을 통한 대상 산의 결정과 그 대상 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자 현지 정찰까지 다녀온 후 심사숙고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방이라는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높이와 멀리, 그리고 깊이를 추구하면서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는 지역 산악인들과 활공인들이 세계 6위봉 초오유 정상에서 순수 국산장비로 역사적인 패러글라이딩을 성공시켜 국위를 선양하고 지역 산악문화 창달과 항공스포츠 발전에 초석을 다질 수 있도록 오로지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살아가면서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들이 늘 꼬리를 물게 되나 봅니다.

많은 경비 지출을 무릎쓰고 원정을 위해 직장생활과 장기간에 걸친 힘든 훈련으로 이중생활을 잘 소화해 나가면서 나름대로 자질을 갖춘 원정대원들이 정상에서 정말 좋은 성과 있도록 각계 각층의 아낌없는 성원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1996.8
96 한국초오유 패러글라이딩 원정대 원정대장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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