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은 안 묶였지만 “핏덩이부터 키워온 내 딸이죠”
호적은 안 묶였지만 “핏덩이부터 키워온 내 딸이죠”
  • 백지영
  • 승인 2020.08.0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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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여의고 울던 앞집 아기, 내 품에선 ‘뚝’
눈에 밟혀 보듬은 지 16년 “이젠 의지하죠”
법적으론 ‘남’…보조금 제한 등 어려움 호소
“엄마, 제가 항상 고마워하는 거 알고 있죠? 저 키우느라 정말 고생하신 거 다 알아요. 나중에 꼭 은혜 갚을게요.”

딸 은하(가명·18) 양이 생일이면 선물과 함께 건넨 편지 내용을 복기하던 이경순(사진·59)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은하 양은 이 씨가 16년째 마음으로 품고 키우는 딸이다. 4일 이 씨가 운영하는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벽에 걸린 돌사진 등 은하 양의 성장 과정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에서 딸 사랑이 물씬 느껴졌다.

사실 이 씨와 은하 양은 생모와 딸 관계가 아니다.

그가 은하 양을 만난 건 진주시 하대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2004년 16년 전의 일이다.

종일 울음을 달고 살던 가게 앞집 신생아 은하 양이 경순 씨의 품에만 오면 생글생글 웃었다. 은하 양 친모는 그를 낳는 과정에서 사망한 상황. 친부와 조모가 열악한 생활 환경 속에 핏덩이 아이를 아등바등 키워보려 했지만 끝내 입양을 고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생후 100일 정도였던 은하 양이 눈에 밟힌 이 씨는 자신이 대신 키워주겠다고 자처했다.

한동안 낮 시간대 아이를 돌봐준 후 밤에는 할머니 손으로 돌려보내곤 했지만 은하 양 생후 1년이 되던 무렵, 슈퍼마켓 영업을 접으면서 아예 이 씨가 데리고 살기 시작했다.

집을 나가버린 은하 양 친부와는 연락할 방도가 없었지만, 아이의 친오빠와 그를 돌보던 조모와는 계속 왕래를 하며 홀로 은하 양을 키워왔다.

“엄마, 오빠는 왜 엄마를 이모라고 불러? 엄마는 엄마잖아”

은하 양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다니던 시절. 이 질문을 들은 이 씨는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마음이 잡혀 은하 양을 불러 상황을 털어놓았다. 차분히 얘기하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놀라 눈물을 글썽거리는 딸의 모습에 이 씨도 함께 울었다.

은하 양 오빠는 진주 외곽에 있는 할머니 댁에 살고 있어 남매가 자주 못 만나는 상황이 마음에 걸린 이 씨는 나름의 큰 결심을 한다.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오빠와 살도록 하고 주말에만 은하 양을 만나는 것.

대신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80대 할머니 댁에 사는 동안에도 잘 지내도록 은하 양 생활비를 비롯해 음식, 김장김치 등을 꼬박꼬박 보냈다.

슈퍼마켓을 접고 분식점, 호떡집, 식당 등을 운영해온 그 역시 상황이 넉넉지 않았지만, 딸이 주눅 드는 것은 싫어 보험부터 휴대전화까지 좋은 것만 골라 챙겼다.

은하 양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난해부터는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혼자 사는 이 씨에게 딸 아이는 큰 활력소다.

다만 은하 양이 아직 호적상 친부, 오빠와 3명이 한 가족으로 묶여 있어 경순 씨와는 법적으로 남남인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은하 아빠가 집을 떠나기 전, 호적에서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권유했는데 이를 따르지 않은 게 후회된다”며 “지금 상태로는 가구원 수에 따라 달라지는 주거 지원이나 정부 보조금 등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처음에는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은하를 돌보기 시작했지만, 딸 아이와 함께 지낸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서로 의지하는 존재가 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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