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1)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21)
  • 경남일보
  • 승인 2020.08.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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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교육계의 별 허만길 박사의 살아온 길(6)
허만길의 ‘외솔 최현배 박사와의 만남 회고’ 마무리 부분을 보기로 한다.

1970년 3월 23일이었다. 허만길은 출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면서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나오는 8시 뉴스를 듣던 그는 크게 놀랐다. 곧 슬픔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글학회 이사이며 국어학자인….”

허만길의 예감은 이상했다. 한글학회 이사장이 아니고 한글학회 이사라고만 한 것이 이상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세브란스병원 별관 524호실에서 오늘 새벽 3시 35분경 별세했습니다.” 방송은 끝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최현배 박사께서는 1894년 10월 19일에 태어나셨으니 76살 되시는 해에 돌아가신 것이다. 허만길은 도시락과 가방을 도로 놓고 밖을 나섰다. 학교에 들러 사정을 말하고 마포구 대흥동 박사님 자택으로 갔다.

아직 박사님의 시신이 집으로 모셔지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집안이 생각보다 조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드님 최철해 부사장(정음사)과 셋째 아드님 최신해 원장(청량일 뇌병원), 셋째 며느님이 마루와 방안에서 우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허만길은 먼저 최신해원장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그저 말을 잃고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른 두 분과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나니 맏아드님 최영해 사장이 울먹이며 허만길을 맞았다.

이때 박사님의 사모님께서 방안에서 들것에 들려 나오셨다. “어머님은 아직 모르십니다. 어머님을 먼저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모시고 아버님을 집으로 모실 작정입니다”라고 최영해 사장이 말했다. 비로소 허만길은 집안 분위기가 왜 그렇게 조용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허만길은 9시 50분경 세브란스병원 별관 524호실에 들어섰다. “선생님!”하고 그는 그만 목이 메었다. 박사님을 덮고 있는 하얀 천을 들친 그는 주무시고 계시는 박사님께서 꼭 일어나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허만길의 머릿속에는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겨레의 붙박이별이 이 땅에서 사라지시어 영원토록 하늘나라에서 빛을 주시기 위해 자리를 옮기신 것이다”라고. 허 웅, 정인승, 김선기, 권승욱 선생들이 자신보다 먼저 와 있었고 그 뒤에 박창해씨가 오고 신문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오후에 허만길이 학교일을 보고 저녁에 다시 대흥동으로 가니 대통령을 대신해 김정렴 정무비서관이 다녀가고 김종필 이후락 등이 드리는 20여 조화가 줄지어 있었다. 거기 쓰인 글은 모두 한글이었다. 국무회의에서는 박사님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기로 가결하였다. 산소는 박사님께서 생전에 원하신 대로 주시경 선생님의 묘소와 가까운 곳으로 정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장현리 양지 바른 곳이었다. 돌아가신지 닷새 되는 3월 27일 9시 30분부터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영결식이 있었다. 허만길은 장례지도위원석에 앉았다. 먼저 국무총리 정일권의 조사가 있었다.

“오늘 겨레의 스승이신 최현베 스승님을 영결하는 이 엄숙한 자리에서 이 사람은 온 겨레와 함께 선생님의 서거를 슬퍼하며 삼가 영전에 머리 슥여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일제의 모진 탄압과 고문,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옥고 속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생각하시며 힌글연구로 아픔을 잊으셨고 조국이 광복되자 후진을 가르치며 국민 교육의 토대를 마련하시기에 청빈낙도하시며 심혈을 쏟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이어서 고려대학교 이종우 총장, 한글학회 정인승 박사 순으로 조사를 했고 이어 서정주 시인의 조시 낭독이 있었는데 “외솔의 주소가 하늘의 영원 속으로 옮기는구나”라 읊었고 이은상 시인은 “해마다 솔씨 떨어져/자라난 다복솔 보소/ 생전엔 외솔일러니/ 인제는 외롭지 않소/ 새솔밭 돌아다보며 웃고 가시옵소서”라 읊었다. 다른 몇 사람과 함께 박사님의 널을 영구차로 모신 허만길은 한글학회 직원 2명과 함께 문화공보부에서 내준 차를 타고 행렬의 맨 앞장을 섰다. 허만길이 탄 차의 앞과 옆으로는 경찰 오토바이가 경건하게 호송을 했다. 눈물을 삼키며 손 저어 박사님의 마지막 길을 인사하는 연세대 재학생, 졸업생을 사이를 통과하며 영구차는 연대 교내를 한 바퀴 돌았다. 정오쯤 영구차는 연대에서 나와 이화대 앞을 지났다. 큰 길에는 이화대 학생들이 나와 신촌로터리를 지났다. 장지까지 조문객 700여명이 따라왔다. 하관이 끝나고 허만길은 상주가 간 뒤 뒷일 진행을 보고 오후 6시경 서울로 출발하였다. “스승님 편안히 쉬십시오 스승님 편안히 쉬십시오” 허만길은 스승이 남기신 일들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눈물 반, 각오 반 다지며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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