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8]런던 내셔널갤러리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8]런던 내셔널갤러리
  • 경남일보
  • 승인 2020.08.0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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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만큼 개성 짙은 도시가 또 있을까? 런던과 동시에 떠오르는 타워 브릿지, 빨간색 이층버스, 버킹엄궁전 앞의 근위병, 런던아이 등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음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섬나라의 위치적 특성으로 뚜렷한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는 영국은 변화무쌍한 날씨로도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그 변덕스러움 때문에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날씨를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날씨가 아무리 짓궂더라도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화창한 날씨의 부재를 위로하는 것인지 궂은 날씨의 대비책인지 알 수 없지만, 런던에는 비오는 날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줄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런던의 중심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내셔널갤러리가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바쁜 도시의 광장 한 가운데 미술관이라니?’라는 의문을 품게 되지만 시내 중심에 미술관 건립을 주도한 런던 정부의 계획은 매우 성공적이라 평가 받는다.



◇ 내셔널갤러리

1753년 런던에는 오늘날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대영박물관이 설립되어 고대유물이나 조각상등을 전시 하고 있었다. 이후 회화 작품만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면서 내셔널갤러리의 탄생을 재촉했다. 내셔널갤러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에는 사업가이자 수집가였던 줄리어스 앵거스틴(John Julius Angerstein)의 개인 소장품을 국가가 매입한 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유럽 국가의 큼지막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주요 소장품들을 살펴보면 왕실 수집품이나 보물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지만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개인의 수집품이 미술관 컬렉션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매입된 앵거스틴의 소장품들은 1824년부터 개인 저택을 개조한 공간에서 처음 공개 되었다. 이후 개인으로부터 작품을 기증받고 국가가 지속적으로 작품을 사들인 덕분에 더욱 커다란 전시 공간이 필요 하게 되었고 1838년 현재 위치의 새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다.

내셔널갤러리가 있는 지역 일대는 일 년 내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런던 최고 중심 지구다. 미술관 건물이 유럽 대다수의 미술관처럼 궁전이나 귀족의 저택으로 쓰였던 건물이 아니라 오로지 내셔널갤러리의 소장품만을 위해 새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도시 외곽의 조용한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치 선정에는 예술을 더욱 많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했던 영국 정부와 각계각층의 의견이 반영되어져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갤러리에 있던 작품들을 영국 서부 웨일스지방으로 안전하게 옮겨 놓아 미술관 건물이 폭격으로 파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을 무사히 지켜 낼 수 있었다. 전시상황 중에도 내셔널갤러리에서는 한 작품씩만을 전시하여 시민들이 전쟁의 고통과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도록 도왔다. 전시되는 그림들은 낮 동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밤에는 다시 안전한 보관 장소로 옮겨지는 것을 반복해야 했지만,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다가올 날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과거를 지나 오늘날에도 내셔널갤러리가 특별계층들만 향유하는 공간이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갤러리가 방문이 쉬운 접근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런던시민들을 비롯하여 미술관을 찾는 이들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되기 때문이다. 미술관과 박물관 몇 군데만 관람해도 비싼 입장료 때문에 여행 경비에 큰 부담을 안게 되는 다른 나라 문화관광과는 달리 런던에서는 이러한 걱정 없이 몇 번이든 내셔널갤러리를 방문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카페에서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미술관 앞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공연을 즐기며 단 5분이라도 갤러리에 걸린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있는 런던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중세 말기부터 19세기말까지의 회화작품 2300여점을 소장 하고 있으며, 20세기 이후의 미술작품은 테이트 모던이나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 소장 되어 있다.

 
아르놀피니부부의초상
◇ 얀 반 에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우리는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미술관에서 사진만큼이나 실제 같은 그림을 마주하게 될 때 느껴지는 감동과 전율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실제와 흡사하게 그리는 일이 화가가 하는 일 아닌가 싶지만, 정교함과 사실성 모두를 표현하기 위해서 화가는 그림을 몇 번이나 지우고 고쳐야 할까. 한편 15세기에는 이미 그린 그림을 수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색채 안료를 달걀과 섞은 템페라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안료가 빨리 말라버리는 성질 때문에 여러 번의 수정작업이 힘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점에 혁신을 일으킨 화가가 플랑드르 지역을 대표하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1390(?)-1441)다.현대 미술사가들은 얀 반 에이크를 유화 기법을 처음 사용한 화가로 지목하는데, 그는 안료를 기름에 섞어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 번 수정이 가능한 유화기법의 장점을 매우 잘 살려냈다. 그의 작품들은 캔버스 이곳저곳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법한 정교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아마도 부부를 나란히 그려놓은 초상화 중에 가장 유명한 그림 일 듯싶다. 내셔널갤러리 방문객들이 큼지막한 대형 작품이나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뒤로 한 채 가장먼저 보려고 하는 이 부부의 초상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숨겨져 있을까?

섬세하고 정교한 부분의 표현을 놓치지 않았던 얀 반 에이크의 솜씨는 부부의 초상에서 정점에 달한 듯하다. 초상화의 남자 주인공 아르놀피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부유한 상인으로 15세기 당시 이러한 초상화를 의뢰했을 정도라면 그 재력과 명성이 꽤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가는 의뢰인의 경제적 넉넉함을 고급 원단이 돋보이는 빨간 침대,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모피 의상, 화려한 샹들리에, 당시 매우 비싼 과일이었던 오렌지를 창문가에 배치시켜 나타냈다. 부인의 펑퍼짐한 의상 때문에 임신을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부유층 여성들이 즐겨 입었던 가운의 형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얀 반 에이크의 섬세함은 그림의 뒤편에서 더욱 여실히 나타난다. 벽면에 쓰인 라틴어를 해석하면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이것이 화가의 서명을 대신 하기도 하고 부부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방에서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그림이 부부의 결혼을 기념하는 초상화라고 알려진 것으로 볼 때, 화가가 이 혼인의 증인으로 참석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씨 아래의 거울 속을 확대해서 살펴보면 부부와 같은 공간에 두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둘 중 한명이 화가 자신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조그마한 거울에 비춰진 사람들을 나타낸 것만으로 그치지 않은 그는 거울의 겉 테두리에도 예수의 고난을 열 장면으로 나타내며 섬세함을 진수를 보여준다.

이 쯤 되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림 속 정교함이 또 있을 것만 같아서 상체를 한껏 그림 쪽으로 기울이는 나를 발견 할 수 있다. 그림은 보는 재미가 아닌 읽어내는 재미라는 것을 얀 반 에이크가 제대로 알려주니까!



주소: Trafalgar Square, London WC2N 5DN

운영시간: 매일 11:00-16:00 pm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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