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란 이런 것인가
삼재란 이런 것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0.08.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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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올 여름만큼 답답한 때가 또 있을까 싶다. 여름이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 했던 코로나19는 아예 ‘위드 코로나19’로 굳어질 기세다. 정치권의 속 보이는 ‘이간계(離間計)’는 한 달 이상 이어진 지루한 장마와 태풍 ‘장미’까지 겹쳐지면서 답답함을 넘어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삼재(三災)’란 게 이런가 보다. 질병과 재해, 정치가 만든 인재까지 한꺼번에 맞았으니 말이다.

역대 최장 기간이라는 이번 장마의 원인은 ‘블로킹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대기의 흐름은 기압골과 기압능선을 이루는 파동운동을 하는 게 정상인데, 대기가 정상 흐름을 벗어나는 ‘블로킹 현상’이 발생하면서 중위도 부근에 집중호우를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흐름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태평성세는 아니어도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기대했던 국민들이 ‘블로킹 현상’ 같은 정상적이지 못한 정치로 심신이 피폐해지는 모진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나랏말 같은 뜻풀이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어의 문제’라는 말도 나왔다. 똑 같은 표현을 자신을 포함한 동일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풀이해 내는 기교의 탁월성이 놀랍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팩트 체크’라는 것도 언론사의 정파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 하물며 ‘기교 재판’이라는 용어조차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이니 어디 믿을 곳이 있겠나 싶다. 정치인의 수사(修辭)는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과 사법의 잣대마저 중심이 무너지면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라는 표현이 나오는 게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따지고 보면 ‘민주’만큼 유용한 위장용 단어도 없는 듯하다. ‘민주’라는 접두사가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모든 행위는 정당화로 귀결 짓는 패악이 여기저기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수오지심이 보이지 않는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염치없고, 성찰은 말로 때우고, 자기비판은 불허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는 여전히 숨죽여 신음하고, 자기편에 줄서지 않은 20대 여성 국회의원은 분홍색 원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다 정권 연장을 위한 전략적 산물이다. 득표력 증강을 위한 줄 세우기 전략이다. 극단적 편 가르기를 통한 우군확보가 목적이다. 팬덤 정치를 활용한 ‘이간계’ 구사는 식은 죽 먹기다. 프로파간다 전술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이슈 선점이나 조어능력, ‘어젠다 셋팅’은 반대 진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대학생과 초등학생 수준 차이다. 그리하여 ‘적폐청산’이라는 의제로 권력을 쟁취하였고, 이제 전권을 장악한 주류로 등극했다. 무소불위라는 표현이 맞다. 거침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해 새로운 양상의 권력을 구축하면서 벌써 사단이 날 징조가 엿 보인다. ‘민주 독재’ ‘신 적폐’ ‘레임덕’ 같은 용어가 나돈다. 신발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보라색 우산 행렬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답답해하고 불편함을 느끼는데도 아니라며 가르치려 들고, 국민을 가지런히 잡아 줄을 세우려 하고 , 부를 놓고 국민과 다투는 정치를 하는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에 나오는 정치의 경지 중 가장 못난 정치의 본보기라는 ‘독재’와 ‘국민과 다투는 정치’에 다름 아니다.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정치는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라 했다. 정치나 날씨나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블로킹 현상’이 생기면 날씨 예측이 제대로 안 돼 불안하듯 정치도 예측이 불가능하면 국민들은 불안하고 초초해 질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떤 일들이 터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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