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그리고 증오와 감정, 독기
이성과 감성, 그리고 증오와 감정, 독기
  • 경남일보
  • 승인 2020.08.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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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논설위원

아고라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설파했다. ‘남을 설득하려면 로고스(이성)와 파토스(감성), 그리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 곧 에토스(이성적 감성)를 갖춰라’고 외친다. 또 말한다. 궤변학자들은 선을 가르치지 않고 선한 척하는 기술만 가르친다고 일갈했다. 혹세무민에 견강부회를 일삼는 무리에 대한 경고였다. 동양에선 제자백가들이 사람의 도리와 세상의 원리를 설파하는 백가쟁명의 시절을 구가했다. 여기에도 궤변으로 사람을 속이는 무리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서양에 ‘아킬레우스와 거북’이라는 제논의 법칙이 회자될 때 동양에선 공손령의 백마비마론 (白馬非馬論)이라는 궤변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다.

설득은 때론 선동과 말하는 사람의 지위와 유명세에 따라 로고스와 파토스의 영향력을 크게 감퇴시키기도 한다. 나치 선동가 괴벨스는 반복된 설득과 선전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게 했다. 뜬금없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괴벨스, 공손룡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요즘의 세태가 ‘그 때와 다름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성적 판단과 올바른 감성, 신뢰가 없어도 진영이 소리하면 ‘원팀’이 되어 한 줄로 서고 진영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는 감정적 언사와 증오, 독기가 판을 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줄서기는 기획된 ‘팀플레이’로 이어져 진영이 다르면 치밀하게 계획된 듯 일사불란함에 공포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괴벨스의 반복된 웅변에 마침내 설득당하고 마는 것처럼 이제는 어느 길이 옳고 그른지 구분조차 힘든 정신적 혼돈으로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워딩이 그러하고, 국토부와 경실련의 부동산에 대한 각종 발표가 그러하다. 여당과 야당의 말이 극과 극을 달리는 현상은 이제 전혀 생경하지 않다. 지금 세상을 사는 방법과 가치기준,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공동으로 지향해야 할 선에 대한 기준마저 흔들리게 하는 선동가들의 언어에는 로고스와 파토스가 결여돼도 별 상관이 없다. 오직 에토스에 의지해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이끌고 또한 그런 선동이 통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는 말의 성찬이 날마다 계속되면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 시끄럽고 혼란스러우니 귀를 막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않거나 그도저도 힘들면 떠나는 게 상책이라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대통령은 가장 책임있는 위치의 사람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한마디는 무게가 실리고 설득력을 갖는다. 신뢰가 간다. 에토스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대통령도 실언을 하고 과거와 지금의 워딩이 다르고 공감능력이 떨어져 국민들이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현안에 대한 인식이 동떨어질 때가 많다는 소리가 나온다. 부동산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말은 이성과 감성과는 거리가 먼 에토스적 발언으로 들린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다르다’, ‘틀리다’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집권세력 내부의 정서이다. 다르게 뭐라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매도하는 분위기는 집권세력이 극복해야 할 가장 심각한 조직문화이다. 다양한 이론을 수용하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상대방을 설득하는 감동의 문화가 없으면 발전이 없다. 아니 부패하고 자가당착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나락에 빠질 수 있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심상찮다. 서울에선 이미 야당의 지지가 높고 2030의 등돌림은 심각하다. 궤변과 강요, 이성과 감성의 지지가 없는 강변으로는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임기말  레임덕마저 겹치면 속수무책이다. 이제는 강경발언과 ‘옳소’를 경계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토록 외치던 촛불정신으로 돌아가 민심에 귀기울일 때다. 지금 큰소리로 강변하던 사람들은 언젠가는 소리없이 떠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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