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유공자·진주 청년 의미있는 동행 '시작'
6·25 유공자·진주 청년 의미있는 동행 '시작'
  • 백지영
  • 승인 2020.08.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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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진주지역 청년들이 나라를 지켜낸 유공자들과 소통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시로 집필하는 뜻깊은 활동을 했다.

경남서부보훈지청이 ‘기억과 평화의 시(詩) 작(作)’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이 활동에는 진주지역 6·25 참전유공자 5명과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20대 청년 5명이 참여했다.

지청은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소통을 통해 보훈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문예 작품을 만들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키우기 위해 이번 활동을 마련했다.

강자연 경남서부보훈지청 주무관은 “유공자들이 단순히 봉사를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더 뿌듯해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어르신들의 삶이 하나하나의 시이자 소설인 만큼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 공동 집필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말 한자리에 모인 6·25 참전용사들과 경남서부보훈지청 청소년 보훈봉사팀원들은 1:1로 짝을 이뤄 글쓰기 특강을 듣고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도병의 길을 택한 참전 유공자들의 이야기는 당시의 전투를 교과서 속 역사로만 접한 청년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손에 내가 먹을 쌀 한 봉지만 들고 전장으로 향했어. 가는 길목엔 시체가 200구씩 쌓여 있었지.” “최전방에 있다 보니 날씨가 참 추워서 끼니로 받은 꽁보리밥 주먹밥 절반은 꽁꽁 얼어있기 일쑤였어.”

“나는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다 보니 학도병은 될 수 없었어. 공군 입대 공지를 보고 입대를 결심하게 됐지. 당시 우리가 희생했다고 사회에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다만 그 당시 책임감을 느끼고 나선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세대들이 하늘을 보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진주대학생연합자원봉사단 ‘위더스’ 보훈팀장을 맡고 있는 문현주(23)씨는 “보훈지청에서 활동을 소개받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 팀원들과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유공자와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접하니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학교에서 배울 때는 막연히 ‘힘들었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체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실감 났다”고 전했다.

활동에 참여한 청년들은 ‘짝꿍’ 참전유공자들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어 지난달 각자 시를 한 편씩 완성했다. 평소 젊은 세대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적었던 유공자들 역시 청년들이 당시의 상황을 경청해 작품으로 만들어 내자 뿌듯해했다.

6·25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공비 토벌 중 기관지를 다쳤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천식을 앓게 된 이주세(88)씨 역시 그중 하나다.

휴전 직전 전사한 큰 형, 큰 총상을 입고 고생한 둘째 형과 비교해 비교적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 이씨는 60~70년대 새마을 운동에 힘쓴 인물이다.

그는 “청년들이 우리가 들려준 얘기에서 애절함을 느끼고 시에 담아내 줘 고맙다”며 “우리는 고생을 했지만 청년들은 고생 없이 평화 속에 잘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6.25 참전용사 이광재·경남서부보훈지청 청소년 보훈봉사팀 강성주 공동지음

유년시절


내 기억 속 무덤을 묻거든
네 기억 속 무덤을 떠올리지 마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썩어 문드러진 전우들이
켜켜이 뒤엉켜 산을 이룬 것이
네가 본 파릇한 풀떼기와 같으니

내 기억 속 산책을 알고 싶거든
네 기억 속 산책을 떠올리지 마라
내 먹을 쌀 포대 등에 이고
사천에서 부산까지 하염없이 걸은 것이
네가 아는 잠깐의 휴식과 같으니

내 기억 속 대한민국을 물으려거든
네 눈앞의 대한민국은 깡그리 잊어라
사방에서 빗발치는 총알에
속절없이 죽어가는 사람에
모든 것이 붕괴돼 허망한 공터가

짤막한 책 몇 개로는 다할 수 없는
몇날며칠 입이 닳도록 말해도 모자란
내 유년시절이노라

※경남일보는 진주지역 6·25전쟁 참전유공자와 청년들이 공동 집필한 시 5편을 매주 1편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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